실학의 부흥, '인문사회학'

입력
202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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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학을 두고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한다.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 그 말의 속뜻을 되짚어 본다. 상아탑(象牙塔)은 현실 세계를 떠나서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요즘 미취업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때 고고한 이상 세계를 그리는 말은 자칫 부정적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이에 한편에서는 지식의 실용성을 강조하고, 그 반작용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은 직업양성기관이 아니라며 우려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다. 고등교육이란 고도의 전문적 지식 또는 기술을 터득하게 하는 교육을 뜻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곧 '전공 공부'와 같은 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내 모든 대학은 '어느 대학교, 무슨 학과'로 정형화되어 있고, 마치 어느 조직사회에서 관등성명을 대듯 서열화되어 있다. 그리고 학과를 단위로 한 각각의 경계는 별개의 세포처럼 구획되어 넘나들기 힘들었다.

최근 대학은 교육 혁신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융합과 통섭의 안목으로 별개이던 전공을 합치거나, 없던 전공을 마련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무전공 모집 정책에 적극성을 보여, 신입생 전체를 무전공으로 선발하거나 단과대학별로 전공 구분 없이 모집하는 곳도 늘었다. 심지어 이수 중인 전공에서 전과를 더 수월하게 하는 다양한 방안도 학칙에 등장했다. 이러한 정책의 기본 생각은 전공 선택권을 학생들에게 넘겨준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전공의 틀을 바꾸는 것은 종종 학생 모집에 대한 '회생 절차' 정도의 오해를 받기도 한다. 특히 학생 모집이 어려워진 전공에서 변화가 크다 보니, 전공별 쏠림 현상에 대한 염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개혁이란 이벤트성 행사와 달리 지향점이 있다. 교육부는 2023년부터 '인문사회융합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문학도가 사회학을 배워 적용하고, 사회학도가 인문학을 바탕으로 사고하며, 여기에다가 기술 변화를 더불어 가르치는 공학을 접목하도록 한 것이다. 교육계의 관습과 조직에 비출 때, 이는 30년 전 학력고사가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뀐 만큼 영향력이 큰 변화이다.

학문은 경계를 나누기보다 경계를 넘나들 때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과거 훈고학, 성리학, 양명학 등 그 어느 학문도 영원한 적 없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확인된다. 학문도 협업을 하며 성장하는데, 협업은 많은 일손이 서로 힘을 합치는 것만이 아니다. 경제분야 전문 용어로서 협업은 '생산의 모든 과정을 전문적인 부문으로 나누어, 여러 사람이 분담하여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학문 간 경중을 따지지 않아도 학문별로 수행할 역할이 있다.

앞에서 대학을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했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달하는 한국 사회에서 고등교육은 보편화를 지향한다. 이 많은 수요자에게 인간의 상식, 보편적 지식에다가 변화된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 및 기능을 갖추게 하는 의미는 크다. 앞에서 말한 문제는 '지식'의 정의를 달리 내리면 해결된다.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 플랫폼'에 막 고등교육에 접어든 예비 인력이 들어와 서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이 인력을 사회의 인재로 키워 향후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지식을 순환시키는 일, 이것도 대학의 큰 역할이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