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잘알' 기술자들의 나라

입력
2024.07.05 17:00
18면
'검찰 공화국' 이어 '법조 국회'
아는 척 있는 척 선전 선동
소통 막히고 정쟁만 부추겨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검찰공화국'에 이어 '법조 국회'다. 22대 국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군은 정치인을 제외하면 법조인이다. 300명 중 60명으로 역대로 따져도 법조인이 가장 많은 국회다. 변호사 출신이 29명이며 검사(19명), 판사(10명) 출신이 뒤를 잇는다.

‘법잘알’(법을 잘 아는) 법조인이 대거 모인 만큼 이번 국회는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까. 기대가 없긴 하지만 무언가 다르긴 다른 모습은 벌써 감지된다. 일단 “공부는 내가 좀 더 잘하지 않았겠어요”(검사 출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라는 말마따나 학창시절 공부깨나 한 법잘알들의 ‘아는 척 배틀’부터 예사롭지 않다.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채 상병 특검법 필리버스터에선 여야 의원들이 서로 “공부 좀 하라”고 핀잔과 면박을 주고받았다. ‘앎과 공부’를 합리적 토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먹물의 속물 근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지만 다짜고짜 “사퇴하세요”라며 삿대질을 하는 ‘호통 단무지’ 의원보다는 그나마 한 계단 올랐다.

‘논리적 막말’이란 그럴싸한 화법도 등장했다. 검사 출신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날 필리버스터에서 채 상병의 희생을 군 장비 파손에 빗대며 “일주일 만에 조사를 한 다음 '군 설비에 대해 파손 책임이 있으니 압류를 해놓고 소송을 진행해야 되겠어'라고 한다면 그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며 "사망사건이든 파손사건이든 조사 체계와 형평성은 같은 기준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전후 맥락을 제거하고 보편적 인권 의식을 내다버린 망언의 본질은 변함없지만 막말에다 논리적 일관성의 외양을 덧씌우는 법잘알들의 ‘있는 척하는 기술’만은 돋보인다.

허술한 논거로 지라시를 방불케 하는 ‘검사 4인 탄핵안’을 주도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변호사 출신이다. 애당초 재판에서 이기지 못할 바엔 소송을 아예 여론 선동용으로 활용하는 것도 법잘알들의 기술이다. 22대 국회에선 이런 류의 선동용 법안이나 탄핵안 등이 무수히 쏟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방탄을 위해, 또 어떤 협박과 선동이 법의 형식을 빌려 국회를 주름잡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이 역시 법잘알들의 기상천외한 기술이 두각을 보일 분야다. 이런 검사 탄핵안에 대해 "나를 탄핵하라"는 어느 검사장의 항변도 '선택적 발끈'의 표상인 검찰이 전매특허로 쓰는 공정의 화장술일 뿐이다.

언뜻 새로워 보이는 법잘알들의 기술은 따져 보면 케케묵었다. 현대 보수주의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년)부터 법잘알들이 나라를 막장으로 몰고 가는 데 대한 우려가 컸다. 프랑스혁명 당시 제3신분 대표인 국민의회의 대다수가 법률 실무가로 구성된 데 놀랐던 버크는, 법조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을 이렇게 비꼬았다. "습성상 간섭하길 좋아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음험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소송하길 좋아하고 게다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이들"이라고. 그들은 "국가의 손실 따위는 어떻게 되든 일절 개의치 않고 지나칠 만큼 잘 아는 사적 이익 추구에 전념할 것이 틀림없다"고.

프랑스혁명에 대한 버크의 평가와 별개로 의회 다수를 차지한 법률가에 대한 비평만큼은 지금 봐도 허를 찌른다. “직업 집단적인 습관의 틀에 너무나도 갇혀 있어 이 좁은 세계에서 반복 작업을 하는 것이 만성화되고 만 사람들은, 인간에 관한 지식이나 복잡한 사상(事象)의 경험이나 다양하게 뒤섞여 있는 내외의 이해에 대한 종합적 ·통일적인 견해 등에 의존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그것을 처리할 자격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무능력자가 되고 마는 겁니다.” 정부 요직과 국회를 장악한 요즘 법잘알 기술자들에게도 꼭 들어맞는 얘기다.

송용창 뉴스1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