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비만 치료 시장이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 공백에 대응해 범위가 넓어진 비대면 진료가 비만약 접근의 문턱을 크게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 비만 치료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글로벌 비만 신약들이 한국 출시를 앞당기고, 토종 제약사들도 자체 개발을 가속하는 모습이다.
9일 한국일보가 아이큐비아를 통해 확보한 비만 의약품 처방 데이터에 따르면, 정부가 의료 공백 문제 해소를 위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한 2월 말 이후인 3월부터 5월까지 석 달간 비만 의약품 처방액은 3억176만 원을 기록했다. 직전 3개월(2023년 12월~2024년 2월)의 처방액 7,901만 원과 비교하면 3.8배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대면 진료가 재개된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의 처방액 5,572만 원에 비하면 5.4배 급증한 액수다.
전체 비대면 진료 처방 의약품 중 비만약의 비중도 늘었다. 지난해 7, 8월 비대면 진료 처방액 중 비만 치료제 비중은 각각 1.0%, 1.2%였다. 여름철이 다이어트 수요가 늘어 비만약 성수기로 꼽히는 점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다. 비수기인 11월의 경우 작년 0.02%까지 최저점을 찍었다가 올해 4월엔 3.2%, 5월엔 3.1%로 뚜렷하게 높아졌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통한 비만약 시장의 성장세에 대해 업계에서는 △비만약 인지도 상승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에 따른 접근성 개선 △비대면 진료 앱의 마케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글로벌 공급난 완화 △계절 수요가 겹쳐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비만 치료제 연매출은 2021년 1,436억 원에서 2022년 1,757억 원, 2023년 1,780억 원으로 늘었다. 특히 세계 당뇨·비만약 시장을 장악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기반 치료제 중 국내에 유일하게 판매 중인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2021년 362억 원이던 삭센다의 연매출은 2022년 589억 원, 2023년 668억 원으로 급성장세다. 올해 1분기 매출은 151억 원으로, 직전 분기의 49.7% 증가했다. 허양임 대한비만학회 홍보이사는 "비만약을 접할 기회가 늘면서 환자들이 치료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비대면 처방에서 오남용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파마들도 한국 비만 치료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비만약명 잽바운드)'는 최근 정부에 당뇨병 치료용으로 급여를 신청했다. 당뇨병과 비만 약은 성분이 같아 순차적으로 출시가 가능하다. 업계는 마운자로가 지난해 약가 협상을 개시했다 중단한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비만약명 위고비)'을 앞지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당시 오젬픽은 글로벌 공급난 탓에 국내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통상 약효가 비슷하거나 낮으면 기존 약값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운자로가 먼저 국내에 진입할 경우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릴리 관계자는 "아직 출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국내 환자들에게 신속하게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성이 입증되면서 국내 제약사들도 비만약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한미약품은 2026년 상반기까지 임상시험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HK이노엔은 중국 바이오 기업인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와 비만약 상업화를 위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한독은 글로벌 제약기업인 바이오콘과 비만 치료제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확보해 출시를 준비 중이다. 유한양행도 프로젠과 손잡고 차세대 비만약 개발에 참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