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이란 자립할 나이가 됐음에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20~30대 젊은이들을 지칭합니다. 요즘 이 캥거루족이 더 나이 들어가고, 더 많아지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이 같은 현상은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5년 주기로 통계청이 발표하는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인구의 7.5%인 약 314만 명이 부모의 도움으로 생활비를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대별로 봤을 때 본격적인 경제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으로 추정되는 20대 중 38.9%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30대에서 7%, 40대에서 2.2%가 캥거루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황은 문제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비중으로는 얼마 안 돼 보이지만 숫자로는 3040세대 캥거루족이 65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고령화, 청년실업 등으로 청년세대의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서 성인 자녀에 대한 부양이 부모세대가 은퇴한 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50대를 넘어 자녀가 있고 은퇴를 앞둔 사람이라면 은퇴생활의 복병, 자녀 지원에 대한 주요 사항들을 한 번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은퇴 후 자녀 지원에 대한 사항들을 확인하기에 앞서 실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부모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2023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은퇴에 임박한 50대의 경우 자녀가 ‘대학교 졸업까지(51.6%)’ 지원하겠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한편 ‘취업할 때까지(15.5%)’, ‘결혼할 때까지(6.4%)’ 등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 지원하겠다고 답변한 분들도 모두 합산하면 약 37%에 달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학만 들어가도 독립시키려는 서양 부모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좀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수준을 고려했을 때 부모의 지원 없이 자녀들이 주택을 마련하기가 결코 쉽지 않고,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심정입니다. 또한 요즘 50대 부모들의 결혼시기 등 일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은퇴 이후에도 자녀가 대학에 다니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대학등록금 등 자녀 학업에 들어가는 비용부터가 은퇴 이후 주요 부담이 되는 항목이라 하겠습니다. 성인 자녀에 대한 지원이 요즘 부모들의 은퇴생활에 주요 난관이 돼가는 모습입니다.
과거와 달리 대학 진학이 거의 당연시되고 있어 주된 직장에서 퇴직을 한 5060세대의 자녀가 학업을 마치지 못했을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 등록금은 꽤 많은 비용으로 대다수 가계 재정에 부담이 되는 항목입니다. 최근 통계(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연간 기준 대학등록금이 평균 680만 원 정도로 4년간 총 2,700만 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자녀 1인당 4년간 총 3,000만 원 정도의 대학 등록금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공립 대학의 경우 등록금(연 421만 원)이 낮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좀 덜하겠지만 등록금이 높은 의학계열 대학의 경우 연간 1,000만 원(979만 원)에 육박하니 6년 동안 총 6,000만 원이나 되는 큰 금액이 들어갑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2022년부터 중위소득 20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자녀 수에 따라 국가장학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셋째 이상 자녀의 대학등록금은 소득구간에 관계없이 전액 지원되고, 2024년부터는 차상위(중위소득 50% 이하)계층 가구의 모든 자녀가 전액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소득구간에 따른 다양한 대학등록금 지원제도가 마련돼 있으니, 자녀들의 학비 걱정에 앞서 지원제도에 해당 사항이 되는지 여부를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학등록금 걱정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습니다.
대학 졸업을 시키고, 직장을 구했으면 자녀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앞서 교육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대 부모 10.2%는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 또는 평생 지원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결혼비용도 부모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말인데, 요즘 결혼비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발표한 ‘2023결혼비용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 총결혼비용은 평균 3억3,050만 원으로 조사됐습니다. 결혼비용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신혼주택 비용(2억7,977만 원)으로 약 85%를 차지했고, 나머지 결혼비용도 5,073만 원으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결혼비용에 대한 부담이 워낙 크다 보니 ‘작은 결혼식(Small wedding)’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등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결혼을 간소화하려는 움직임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가다 보니 부모의 지원 없이는 결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결혼하는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많은 부모들이 결혼비용 지원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당사(NH투자증권) 5060세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 3명 중 2명꼴(65.2%)로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 또는 평생 자녀를 지원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녀들의 학업비용이나 결혼비용은 우리나라 부모들이라면 대부분 마음의 빚으로 평생 담아두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지가 있다면 자녀의 주택 마련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취업이나 결혼이 늦어진 나이 든 자녀의 생활비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손자들의 양육비나 교육비까지도 부담하고 있는 부모들도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녀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성인자녀는 10년간 5,000만 원(미성년자 2,000만 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됩니다. 해당 금액을 미리 자녀명의 계좌로 예치해 운용해 가다가 자녀에게 지원이 필요한 경우 사용하는 겁니다. 국가에서도 결혼∙출산∙양육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최근 자녀 혼인신고일 전후로 2년 이내에는 1억 원을 추가로 공제받을 수 있도록 세제가 개편됐습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1인당 최대 1억5,000만 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양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면 최대 3억 원까지 가능하니 자녀들이 독립된 가구로 자리 잡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은퇴 이후 자녀로부터 지원을 받기보다는 지원해주고 싶은 것이 현재 은퇴를 앞둔 부모세대의 마음이자 닥친 현실입니다. 다만 부모들의 은퇴생활을 위한 자산과 자녀 지원을 위한 자산의 목적을 명확하게 구분을 지어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하다 보면 부모의 안정된 은퇴생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고, 결과적으로 다시 자녀에게 부담을 주거나 가족 간 갈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녀 지원을 위한 계획은 반드시 자신의 은퇴자산과는 분리된 별도의 자금으로 균형감을 가지고 대응해야 합니다. 부모가 금전적으로 자녀지원을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녀에게는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충분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자녀 사랑 때문에 한정된 노후자산을 희생하는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스스로 경제적인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더 득이 될 수 있습니다.
김진웅 NH WM마스터즈 수석전문위원(NH투자증권 100세시대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