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 추도비 철거됐지만… "'일본의 양심' 현장에 가도록 만들고 싶다"

입력
2024.07.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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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들, 신주쿠 고려박물관서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비 기획전 열어

"많은 일본인이 일본의 양심을 계승하려는 지역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에서 만난 오기하라 미도리(76)는 이렇게 말했다.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사회가 한일 역사 문제를 알리기 위해 설립한 이곳에서 열리는 '강제연행·강제노동의 부정에 저항한다: 각 지역 추도·계승의 장을 찾아' 기획 전시회 취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지난 1월 말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 공원 '군마의 숲'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는 철거됐지만,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 정신은 일본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전시회라고 했다. 오기하라는 일본의 '징용공(강제동원)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이하 징용공모임) 회원이다.

3년간 전시 준비... 추도비 지역 15곳 찾기도

징용공모임은 이번 전시를 3년이나 준비했다. 한국 대법원이 2018년 10월 일본 피고 기업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명령하고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강제동원이 한일 간 주요 현안으로 부상한 점에 주목했다. 일본이 이를 핑계 삼아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에 나서며 양국 갈등은 더 고조됐다. 이 때문에 징용공모임은 '과거사를 부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알리려면 강제동원을 탐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21년 9월 본격적 작업이 시작됐다.

회원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비가 설치된 지역 15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일본 북쪽 홋카이도의 우류댐 추모 현장부터 남쪽 후쿠오카현 미이케탄광까지,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가혹한 노역 현장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기록했다.

"가해의 역사 잊지 않으려는 마음"

전시회 포스터에 한글로 적힌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마음가짐을 표현하고자 군마 추도비도 재현했다. 고려박물관 입구 바로 앞에는 철거 전 군마 추도비를 모형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 전시됐다. 군마현에 사는 50대 재일동포가 직접 제작, 도쿄 신주쿠의 한 강제동원 관련 시민단체에 기증한 작품이었다. 징용공모임 회원 오카다 지에코(73)는 이를 소개하며 "군마현 추도비는 철거됐지만 이를 계승하려는 일본인들의 마음, 두 번 다시 가해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징용공모임은 추도비 소개 패널마다 각 지역의 추모 단체 연락처를 새겨 넣었다.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에게 지역 단체와의 소통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오기하라는 "연락처를 보고 직접 현장에 가는 일본인이 늘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담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4일부터 내년 1월 26일까지 열리며, 지역 곳곳에서 활동하는 추모 단체의 강연회도 진행된다.

도쿄= 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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