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노동자 10명 중 예닐곱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노동 강도 탓에 이직을 고민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과도한 업무 때문에 주 1회 이상 식사를 거르는 비율도 절반이 넘었다. 또 60%는 업무 도중 폭언 피해를 당했지만 고충 처리를 비롯한 피해 회복 조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3일 공개한 ‘2024년 보건의료 노동자 정기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노동 조건을 측정하는 주요 지표인 ‘이직 의향’에 관한 질문에 64.6%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19.7%)거나 ‘가끔씩 생각한 적이 있다’(44.9%)고 답했다. 2020년 66.6%에서 2021년 65.9%, 2022년 67.9%, 2023년 66.0%로 줄곧 60% 중후반대 응답률이 유지되는 건 현장에서 체감할 만큼 노동 조건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최근 3개월간 이직을 고려한 사유(복수응답)로 근무 조건 및 노동 강도를 상위 2개 안에 꼽은 응답자가 67.2%(1순위 39.2%, 2순위 28.0%)로 가장 많았다. 낮은 임금 수준을 1, 2순위로 꼽은 답변(각각 29.3%, 20.5%, 총 49.8%)보다도 17%포인트 이상 많다. 직장문화, 임신·출산·육아·가족돌봄, 건강, 학업, 진로변경 등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노동 강도를 측정하는 지표 중 하나인 ‘식사 시간 보장’에 관한 문항에서도 ‘거르지 않는다’는 답변은 2020년 55.0%에서 매년 1~2%포인트씩 하락해 올해는 47.1%로 4년 사이 8%포인트 감소했다. 보건의료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주 1회 이상 식사를 거르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식사 거르는 횟수가 주 1, 2회는 각각 11.6%, 주 3회는 11.2%로 2020년(각각 12.2%, 11.6%, 10.4%) 이후 큰 변동이 없지만, 같은 기간 주 4회는 5.1%에서 7.5%로, 주 5회는 5.8%에서 11.0%로 증가했다.
병원 특성에 따라 편차도 컸다. ‘식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는다’는 답변은 정신·재활·요양병원(기타)에선 72.3%로 높았지만, 사립대병원과 국립대병원에선 각각 41.2%와 42.6%로 절반을 밑돌았다. 직군별로도 주 1~5회 식사를 거르는 비율이 간호직에서 67.9%로 가장 높았고, 간호조무직 36.9%, 기능직 및 운영지원직 32.4%, 보건직 15.9%, 사무행정직 15.2%, 연구직 15.1%, 기술직 13.2%, 약무직 5.4%로 차이가 두드러졌다.
주 4일제 근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주 4일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33.1%,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은 42.5%로, 전체 75.6%가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했다. 특히 44.3%가 주 4일제가 시행되면 ‘육체적 정신적 부담이 줄어서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해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현재 업무에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 직원 10명 중 6명(60.9%)은 최근 1년 사이 폭언, 폭행,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호소했다. 폭언이 60.3%로 가장 많았고, 폭행 13.3%, 성폭력 8.6% 순이었다. 폭언 피해는 간호직에서 69.2%로 매우 높았고, 간호조무직 53.4%, 기능직 및 운영지원직 44.2%, 사무행정직 41.6%, 보건직 40% 순이었다. 주요 가해자는 환자와 대상자(41.3%), 보호자(27.8%) 다음으로 의사(16.0%), 상급자(9.0%), 동료(5.9%)가 꼽혔다. 대면 접촉이 많은 직무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피해 발생 이후 구제 과정은 거의 없었다. 직장 내 노동조합이나 고충처리위원회 신고, 법적 대응 또는 외부 제도 요청 등 의료기관 내외 제도적 절차를 활용한다는 응답은 모든 피해 유형에서 2% 미만으로 극히 저조했다. 약 98%는 참고 넘기거나, 주변에 하소연하거나,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소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자와 분리 조치가 14.6%로 그나마 비중이 높았고, 업무 일시 중단(7.1%), 휴게시간 부여(5.1%), 치료 상담 지원(1.8%), 유급휴가(1.3%)는 극히 적었다. 보건의료노조는 “대다수 피해자는 마땅히 받아야 할 의무 조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 법·제도적 보호와 건강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실태 조사는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위탁받아 1월 29일부터 한 달간 진행됐고 전체 조합원 1만4,381명 중 4만760명(47.6%)이 참여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0.3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