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이 치솟자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하고 나섰다. 앞서 대출규제 정책 중 하나인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적용을 두 달 미루는 등 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조치를 취한 정부가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인데, '엇박자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3일 은행연합회와 17개 국내 은행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들을 소집해 가계대출 동향과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달 시중은행 가계부채 잔액이 집계된 지 이틀 만에 긴급 소집이 이뤄진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안정화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최근 가계대출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6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5,723억 원으로 전달 대비 5조3,415억 원이 증가했다. 월별 규모로는 2년 11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6개월 만에 16조1,629억 원(2.33%)이 증가했다. 올해 초 5대 은행은 가계대출 증가율을 2% 내에서 관리하겠다고 금융당국에 보고했는데, 상반기에 이미 이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가파른 가계대출 증가세에 금융당국은 은행권을 향해 관리를 주문하는 한편, 현장점검을 예고하면서 대출 조이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감원은 영업 현장에서 스트레스 DSR 1단계 등 대출규제가 차질 없이 집행되는지 확인하고, 지적사항이 나오면 엄중 조치하겠다는 방침도 전했다. 이준수 금감원 은행·중소서민금융 부원장은 이날 "당국의 최우선순위 정책 목표는 가계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줄여나가면서 상환능력 이내에서 빌려주는 대출관행을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대출 줄이기에 나섰다. 은행권 주담대 금리는 지난해 말 평균 연 4.16% 수준에서 지난달 연 3.67%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최근 혼합형(고정)의 경우 연 2%대도 등장하면서 가계대출 증가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이달 1일부터 주담대 감면금리 폭을 최대 0.2%포인트 축소 조정했다. KB국민은행도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기 위해 이날부터 가계 부동산담보대출 가산금리를 0.13%포인트씩 올렸다. NH농협은행은 이달 중 주담대 금리를 인상하기로 가닥을 잡고 폭을 저울질하고 있으며, 신한·우리은행의 경우 대출 잔액 추이를 보면서 금리와 한도 조정 등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달부터 시행 예정이던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를 9월로 미루는 결정을 내리면서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해 놓고, 대출이 늘어나니 다시 조이는 엇박자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강화된 규제를 돌연 2개월 연기하면서 이 기간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라는 신호를 준 곳은 정부"라며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강화된 대출규제가 연기되자 부동산 시장에서는 '영끌 막차'를 타려는 움직임도 분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년 결혼 예정인 직장인 최모(35)씨는 "지난 주말부터 신혼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괜찮은 매물엔 대기줄까지 생겼다"며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 사이에는 한도가 줄기 전에 대출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이 부원장은 "최근 1, 2주 사이 부동산 심리가 과열조짐을 보여 선제 대응한 것"이라며 "정책 오락가락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