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 BBC가 방영한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가 조회수 1,000만을 넘는 등 주목을 받았다. 버닝썬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권력과 유착된 특권 집단의 젠더범죄가 얼마나 추악했는지 전말을 밝히고, 가해자들의 처벌까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용기가 필요했던 걸 보여줬다. 이런 다큐멘터리가 해외 언론에 의해 제작되기 전까지 국내 언론은 뭘 했느냐는 질타도 이어졌다.
Why is Korea so lenient?
관련 댓글 창을 검색하면, 외국인의 댓글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가해자들의 가벼운 형량이나 사건의 뒤를 봐준 '경찰총장'이 무죄를 선고 받은 사법체계를 질타했다. 이는 오해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 전반의 여론이나 한국 남성들 대부분이 성폭력 범죄나 몰카사건에 관대하다는 식의 오해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오해의 출발은 다큐멘터리에서 정확히 표현했듯이 범행 당사자나 그들의 열성 팬들의 언행을 한국 사람, 한국 남자 일반의 생각으로 확대 해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버닝썬 대표가 "승리가 유죄라면 대한민국 남자 모두 유죄"라고 주장한 것은 가해자들과 일부 열성 팬들의 잘못된 행태를 일반 현상으로 확장하여 가해자들을 '페미니스트' 공격의 희생양으로 프레이밍해보려는 시도였다.
여론은 버닝썬에 관대하지 않았다
대중 여론의 관점에서 보면 버닝썬 사건에 대한 여론은 젠더 간 대립하는 젠더갈등 이슈가 아니었다. 버닝썬과 같은 몰카, 성폭력 범죄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2019년 여성정책연구원의 5,000명 조사 결과를 보자. 청년세대(19~34세 1,678명)와 기성세대(35~59세 2,333명)의 응답을 남녀 집단으로 나누어보면 '버닝썬 게이트', '미투운동', '강남역 추모시위', '혜화역 시위', '낙태죄 폐지', '소라넷 폐지' 등 여성의 인권과 안전, 성폭력 관련 운동에 대해서는 세대 불문, 남녀 불문 공통적으로 과반 이상이 지지한다. 여성에 비해 남성이, 청년세대 남성에서 동의하는 비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뿐 집단 간 갈등이슈로 보기는 어렵다.
버닝썬이 바꾼 현실: 성폭력/스토킹/성희롱 엄단하라
2022년 한국리서치 '여론속의 여론'에서 주요 양성평등 정책에 대한 공감도를 보면 '스토킹 처벌', '여성폭력, 성착취 근절',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조직문화 개선'과 같은 성적 안전관련 정책이나 '취약계층 여성 지원', '출산/육아휴직', '경력단절 여성 지원' 등 지원 정책에 대해서는 80~90%가 넘게 그 필요성(매우 필요+어느 정도)을 지지했다. 2023년 1월 KBS 조사, 2023년 11월 한국리서치 조사, 2024년 6월 한국사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92~93%로 사실상 만장일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성범죄 관련 무고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88~89% 수준으로 높다.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균형감각도 공존하고 있다.
다수의 여론조사는 한국 사회가 남녀 세대구분 없이 그때나 지금이나 압도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걸 보여준다.
폭로 다큐멘터리는 한국 사회를 변화하는 데도 일정 부분 성공했다. '가해자들은 이미 출소하거나 무죄를 받았고, 강남 클럽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성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가 됐다. 요컨대 성폭행, 성착취, 불법촬영 등에 대한 처벌이 너무 관대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모두 다큐멘터리 주인공들의 희생과 용기가 만들어낸 성과다. 버닝썬에 관대했던 것은 사법 시스템의 판단이지, 한국사람들의 생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