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씁쓸한 뉴스를 접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에너지 드링크에 기대어 전선에서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군인들이 1,000㎞에 달하는 전선에서 카페인과 타우린이 다량 함유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버틴다고 보도했다. 집중력을 높이고 피로를 해소해 줘 극한의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지라 에너지 드링크가 화폐 취급까지 받는다고 한다.
'레드불'이나 '몬스터 에너지'처럼 세계적인 브랜드도 있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현지 제품 '볼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마침 '의지'를 뜻하는 '볼랴'는 전쟁 발발 다음 해인 2023년 1월에 출시됐는데, 제조사인 IDS우크라이나는 군에 4만 캔을 기부했다. 그래도 에너지 드링크는 양반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유서 깊은 각성제 암페타민이 쓰였는데 현재 러시아군에도 지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에너지 드링크는 원래 스케이트보드나 모터사이클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와 활발하다 못해 격렬한 신체 활동을 장려하는 이미지로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런 음료가 전장에서 각성제로 쓰이고 있다니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 모든 제품이 홍보를 위해 잘 어울리고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는 가운데, 스포츠 음료만큼 이에 성공한 경우가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에너지 드링크의 기원은 1962년 일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한 총력전 속에서 각성제 암페타민이 빈번히 쓰였다. 법으로 금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오남용이 근절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같은 효용을 안전하게 제공하는 식품 차원의 대체재가 필요했으니, 타이쇼 제약회사가 '리포비탄D'를 개발 및 출시했다. 오늘날 카페인과 더불어 에너지 드링크의 핵심 성분인 타우린을 함유한 음료였다.
리포비탄D는 암페타민의 효용을 경험했을 공장 노동자나 트럭 운전기사들을 중심으로 저변을 넓혀 나갔다. "파이팅, 한 방!"이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와 더불어 근성을 강조한 리포비탄D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라벨이며 병의 디자인 등이 흡사해 박카스가 리포비탄D를 참조(?)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하필 박카스가 1년 뒤인 1963년에 출시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맛은 서로 다르다.
1976년 본격적인 에너지 드링크의 서막이 올랐다. 태국 제조업체 찰레오 유위디아가 '끄라팅 댕'이라는 제품을 발매한 것이다. 태국어로 '붉은 황소'라는 뜻의 끄라팅 댕은 리포비탄D의 주성분인 타우린에 카페인과 비타민B 등을 더한 무탄산음료였다. 일본으로 넘어가 기업 임원들에게 인기를 끈 끄라팅 댕은 1984년 오스트리아의 사업가 디트리히 마테쉬츠(1944~2022)의 눈에 띈다.
태국 방콕을 방문한 마테쉬츠는 시차 극복을 위해 끄라팅 댕을 마시고는 효능에 놀랐다. 그는 찰레오 유위디아와 협력해 끄라팅 댕의 탄산음료 버전을 개발해 출시했다. 바로 우리가 아는 에너지 드링크의 대명사 레드불의 탄생이다. 레드불은 곧 각광을 받으며 1997년 미국에 상륙해 대학가에 침투했다. 밤샘 공부 등을 위한 각성제로 저변을 넓히고 자리를 잡았다.
레드불이 미국 대학가에 손쉽게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미국 대학 생활의 일부인 파티나 스포츠 행사 등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조금씩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나 놀 때나 제대로 하려면 레드불'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특히 '레드불이 날개를 달아 줘!(Red Bull Gets You Wings!)'라는 슬로건을 강조한 애니메이션 광고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레드불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 못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1996~2006년 사이에 3억 캔이 팔리며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에너지 드링크의 이미지와 시장을 형성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2002년엔 후발 주자인 '몬스터 에너지'가 가세했다. 1930년대부터 과일주스를 생산한 기업 한센스 내추럴이 레드불의 폭발적인 성공을 보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몬스터 에너지는 레드불보다 좀 더 과감한 이미지 구축을 시도했다. 1990년대 말부터 림프 비즈킷 등의 밴드가 유행시켰던, 랩과 헤비메탈을 접목한 '뉴 메탈(Nu Metal)'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검은색 바탕에 용 혹은 괴수가 발톱으로 긁어서 낸 상처 같은 분위기의 녹색 'M'자 로고를 강조했으며 음료 색깔 또한 로고와 맞춰 활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마케팅 또한 빠질 수 없었다. 스포츠 후원 프로그램 '몬스터 아미'를 통해 젊은 스노보드 선수나 서핑 선수들을 지원해 레드불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음모론도 알게 모르게 홍보에 도움을 주었다. 브랜드의 로고 M자가 히브리어 6을 세 개 겹친 모양이므로 악마의 숫자 666이라는 소문이 돈 것이다. 여기에 '야수를 놓아주라(Unleash the Beast)'라는 슬로건까지 가세해 몬스터 에너지는 악마의 음료라는 평판을 거느리게 됐다.
레드불과 몬스터 에너지가 일군 에너지 드링크 시장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알아채자 곧 많은 브랜드들이 가세했다. '록스타', '포로코' 등의 제품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나름의 차별점을 구축했으니, 에너지 드링크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그러면서 시장 분위기와 제품 정체성 또한 조금씩 변해 갔다. 원조인 리포비탄D가 노동자를 겨냥했다면, 현대 에너지 드링크는 10대를 겨냥했다.
모터사이클 경주나 서핑, 카약을 넘어서 파쿠르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와 선수를 후원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에너지 음료는 10대를 주력 소비자층으로 규정하면서 실질적으로 미성년자를 위한 주류 대체 음료가 됐다. 스포츠를 넘어 음악 페스티벌과 e스포츠, 즉 게임 대회 등을 후원하면서 10대의 마음을 더 파고들었다.
이러한 에너지 드링크의 마케팅 전략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제조사들은 홍보 전략이 성인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사뭇 달랐다.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에너지 드링크의 홍보 전략은 20세기의 담배 홍보와 매우 흡사하다. 성인들을 겨낭한다지만 실제로는 그런 이미지를 멋지게 보는 미성년자들의 소비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너지 드링크는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카페인 과다 섭취를 우려해 미성년자의 소비를 금해야 한다는 소비자 의견과 다른 음료에 비해 공정하지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산자 의견이 충돌한다. 몬스터 에너지는 다섯 건의 죽음과 관련 미국 식약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하루에 두 캔을 마신 14세 소녀와 석 달 동안 세 캔을 마시고 심장마비를 겪은 성인 등이 있었다.
성인이라고 에너지 드링크로부터 아주 안전한 건 아니다. 보드카 등 리큐어와 에너지 드링크를 섞어 만드는 칵테일이 등장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예거 밤(예거마이스터+레드불)' 같은 칵테일은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는 알코올과 다량의 카페인을 함께 섭취하므로 취하는지 모르고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만든다. 과다 음주는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음주 운전 등의 사고 또한 유발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드링크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다. 전반적인 음료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보여주는 성장세라 놀랍기까지 하다. '고전' 대접을 받는 레드불과 몬스터 에너지가 품목 다변화를 통해 시장 유지를 노리는 가운데, 탄산 음료 브랜드마저도 카페인 함유량을 늘린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2022년 580억 달러(약 80조 원) 규모의 에너지 드링크 시장은 2026년 770억 달러(약 107조 원)로 더욱 팽창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