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명'(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까지 떨어진 저출생 추세 극복을 위해 정부가 지난달 3대 분야 정책을 발표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알맹이 빠진 대책"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출산의 핵심 의사 결정자인 여성과 관련한 정책은 실종됐고, 육아휴직 제도 강화나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기준 완화 등은 일부 계층에만 수혜 범위가 한정됐다는 게 비판의 이유다.
여성노동연대회의, 이주 가사·돌봄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주4일제 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야말로 국가비상사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지난달 19일 정부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한편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3대 핵심 분야에 방점을 찍은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충분한 육아시간을 돌려 드리겠다"며 일·가정 양립 방안으로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월 최대 150만→250만 원), 동료 업무분담 지원금과 중소기업 대체인력 고용 지원금 등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2,100만 노동자 중에 860만 비정규직, 840만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380만 5인 미만 사업장은 빠진 대책"이라며 "육아휴직은 고용보험 가입자만 이용 가능하기에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발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화를 함께 논의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일·생활균형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박지수 활동가는 "저출생 대책의 핵심인 노동시간 관련 제도를 논의할 일·생활균형위 구성은 13명 전원 남성"이라며 "여성 노동자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이 위원회에서 과연 저출생의 근본 문제를 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김 이사장도 "청년도 여성도 없는 일·생활균형위"라며 "장시간 노동 단축도 저출생 대책 핵심이어야 하지만 정부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평등 등 여성 관련 정책이 실종된 점도 직접적인 '정책 이해관계자'인 청년 여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불렀다.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지난해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를 넘는 수준"이라며 "가정 내 가사 및 돌봄노동 성별 불평등, 여가와 쉼을 담보로 한 장기 노동 관행,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불평등 등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가 저출생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정부가 선정한 3대 분야 정책은 고용보험에 가입된, 집 살 여력이 있는 이들에 한정된 대책이며 노동시간 단축 없이 아이 키우는 일의 외주화만 궁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9년 출산 가구 가운데 상위층은 54.5%, 중위층은 37.0%인 데 반해 하위층은 8.5%에 불과했듯 이미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은 계급화됐다"면서 "정부 역할은 이런 계급사회를 완화할 고용 주거 세금 젠더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