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탁재훈 예능 성 상품화 논란엔 ①OTT면 괜찮아 ②왜곡된 성 콘텐츠 제작 ③기획사 뒷짐

입력
2024.07.0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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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상품화 논란 잇따른 대중문화] 

박재범, 음란물 유포 플랫폼서 신곡 홍보 
여성 아이돌에 AV 배우 데뷔 권한 '노빠꾸 탁재훈'

심의 장벽 낮은 OTT서 성 인식 왜곡 콘텐츠 제작 잇따라 
"남성 시청자 타깃" 황당한 '구독자 맞춤형' 
"남녀 모두 즐겨야 코미디" 비판
영국은 OTT 심의 규제 추진...한국은 '셀프 심의'

성 상품화 논란 여성 아이돌 직격탄
뉴진스·게임사 협업에 '유저 성희롱' 논란
한류 IP 관리 중요한데 성 인지 감수성 바닥 
"K팝 아이돌의 성 상품화 원리 드러나"



#1. 래퍼 박재범은 해외 온라인 성인용 플랫폼 온리팬스에 새 계정을 만들어 그 주소를 팬들에게 공개했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신곡을 홍보하면서다. 박재범은 벌거벗은 상반신 위로 빨간색 여성 속옷을 올려놓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의 사진을 여기에 올렸다. 온리팬스는 미성년 성 착취 동영상 유포로 국내 수사 기관에서도 단속을 벌인 곳. “청소년에게 영향력이 큰 유명 래퍼가 성 착취 동영상을 사고팔아 논란이 인 곳에서 신곡 홍보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 “몸매가 좋으니 (성인물 영상 찍는 배우로) 일본에서 데뷔해 주세요.” 일본 AV(성인용 동영상) 배우 오구라 유나는 지난달 19일 공개된 유튜브 예능프로그램 ‘노빠꾸 탁재훈’에서 여성 그룹 시그니처 멤버 지원에게 이렇게 권했다. 영상엔 ‘인턴 MC’로 출연한 지원이 당황하는 장면과 남성 출연자가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K콘텐츠 제작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작진에겐 “지원에 대한 모욕이자 성희롱”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K콘텐츠 '단골손님' AV 배우

대중문화에서 성 상품화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관심을 얻거나 조회수를 끌어 올리기 위해 무분별하게 제작되는 성 관련 콘텐츠는 성 인식을 왜곡하고 인권까지 침해하는 등 폐해도 속출한다. 업계의 인식 변화와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성 상품화는 점점 노골적으로 이뤄지는 실정이다. AV 배우는 요즘 K콘텐츠의 ‘단골손님’이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예능프로그램 ‘성+인물’(2023)에선 일본 AV 배우가 “AV가 많은 사람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성범죄율을 낮추는 것 같다”고 말한 부분이 논란을 빚었다. 성범죄가 일어나는 폭력적 구조에 대한 문제 인식이 결여된 이 같은 발언은 검증이 된 사실이 아닐뿐더러 성 산업을 미화하며 관련 인식을 왜곡할 수 있어 비판을 샀다.

성 상품화 콘텐츠 제작이 늘고 부작용도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미디어 산업의 변화가 있다. ①방송과 달리 심의 규제에서 자유로운 OTT 플랫폼 특성을 이용해 ②뒤틀리거나 폭력적인 성 인식을 드러내는 선정적 콘텐츠 제작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한석현 YMCA 시민중계실장은 “미디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성 상품화를 ‘쿨’한 것처럼 포장해 시청자를 끌어모으려는 콘텐츠 제작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며 “’OTT인데 뭐 어때’라는 인식이 업계에 팽배해지면서 최소한의 성 인지 감수성을 콘텐츠에 확보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실종되다 보니 잡음이 잇따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녀 갈라치기' 성 콘텐츠까지

규제 장벽이 낮은 OTT에선 성을 소재로 한 ‘남녀 갈라치기’ 콘텐츠 제작이 늘면서 성 상품화 논란도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AV 배우 데뷔 권유 발언 노출 비판에 대해 ‘노빠꾸 탁재훈’ 제작진은 “현장의 재미만을 위한 불찰”이라고 사과하면서 “남성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해명해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

이를 두고 김헌식 중원대 사회문화대 특임교수는 “AV 배우를 출연시키고 AV 배우 데뷔를 권유하는 내용을 남성이 소비하는 것으로 당연하게 집단화하는 제작진의 왜곡된 인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남성들이 보는 콘텐츠에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 문제적이었는데 ‘구독자 맞춤형’이란 변명은 너무 선택적”이라며 “성별과 상관없이 같이 즐길 수 있어야 그게 코미디이고, TV에서 OTT·유튜브로 콘텐츠 권력 주도권이 넘어온 이상 제작진과 출연진은 불특정 다수가 본다는 책임감을 지닐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OTT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영국은 OTT를 TV처럼 심의 규제하는 정책 추진에 나섰다. 한국은 그 반대다. 빠른 등급 분류 심사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구실로 지난해 3월부터 OTT가 자체적으로 등급 분류를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성희롱? 감정적 문제없다"는 '황당한 기획사'

대중문화에서 심화하는 성 상품화의 피해는 여성 아이돌에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③매출 확대에 급급한 K팝 기획사들이 성 상품화의 폐해를 간과해 상처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이브는 최근 미성년 멤버가 포함된 그룹 뉴진스와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는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협업 아이템을 출시하면서 게임 캐릭터를 뉴진스 멤버로 꾸밀 수 있도록 해 비판을 받았다. 일부 게임 이용자가 뉴진스 캐릭터에 노출이 심한 속옷 등을 입힌 뒤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온라인에 공유하면서 성희롱 논란이 불거진 여파다.

성 상품화 폐해에 둔감한 기획사의 악례는 ‘노빠꾸 탁재훈’ 성 상품화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작진은 “지원에게 배려가 없었다”고 사과했는데 정작 그의 소속사 C9엔터테인먼트는 입장문을 내 “지원은 어떠한 감정적 문제도 없다. 제작진으로부터 편집본을 사전에 공유받았는데 방송분(노출)에 이견이 없음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입장문이 올라온 SNS 게시물엔 ‘황당하다’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사전에 문제의 영상을 봤는데도 소속사가 그냥 넘긴 데다, 가수가 성희롱을 당했다는 우려가 쏟아지는 데도 ‘괜찮다’고 나선 꼴이라서다. K팝 한류로 어느 때보다 지식재산권(IP), 즉 아이돌 관리가 중요해진 때 기획사들이 성 상품화 구설을 내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K팝 문화 관련 책 ‘망설이는 사랑’을 쓴 안희제 문화연구자는 “이런 모순은 지금의 K팝 아이돌 산업이 무엇을 상품화하고 있는지 그 원리가 드러나는 장면들”이라며 “다른 산업과 달리 K팝 산업은 상품이 사람과 너무도 딱 달라붙어 있지만 ‘사람=상품’이라는 등식은 사람을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기도 하는 만큼 항상 그 상품이 ‘사람’이라는 점을 먼저 고려해야만 이 산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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