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방부의 군인 사랑이 이렇게 세심하고 철저한 줄 몰랐다. 대민 지원으로 알고 간 장병들이 구명복도 없이 수중 수색작업에 투입되었다가 거센 물살에 휩쓸려 죽거나 과도한 훈련으로 근육이 녹아서 죽는 비극이 일어나는 나라에서 말이다.
우리나라 군대에 납품하는 화장지는 100% 천연펄프를 사용해야 한다. 조달청 나라장터의 군 화장지 구매요구서의 요구제원인데, 폐지가 사용된 재생 화장지의 군대 납품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녹색제품구매법에 따라 재활용제품 구매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에서 아예 재활용제품을 외면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재생 화장지 품질이 떨어져 화장실에서 군인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생 화장지는 100% 천연펄프로 만든 화장지와 품질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국내 화장지 시장에서 재생 화장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다. 이미 다수의 소비자가 큰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다. 군대가 재생 화장지의 성역이 될 이유는 없다. 2022년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꼬집고 환경부도 녹색제품 기준을 충족하는 재생제품 사용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재생 화장지에 사용하는 폐지의 주요 원료는 우유팩이다. 우유팩 양면에 코팅된 비닐을 벗기면 안쪽은 100% 천연펄프로 된 고품질의 하얀색 종이이기 때문에 우유팩을 잘 모으면 고품질 재생 화장지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재생 화장지 시장은 저가의 수입 천연펄프 화장지의 공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만든 저가 천연펄프 화장지가 벌써 국내 시장을 30%가량 장악했고 점유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 상태로 가면 국내 재생 화장지 업체는 연쇄도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유팩의 순환 고리는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재생 화장지 시장 보호를 위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인류의 '뒤처리' 역사에서 화장지는 치질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 혁명이었다. 19세기 중반 미국 사업가 조셉 가예티가 만든 최초의 화장지는 '변기용 약용지'였다. 종이에 알로에를 흠뻑 먹여 치질 치료용으로 팔았다. 가운데 심이 있는 두루마리 형태의 화장지는 19세기 말 스콧 형제가 상업화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화장지 생산은 1971년 유한킴벌리였고, 1978년 삼정펄프는 재생 화장지를 생산했다. 엉덩이를 행복하게 하는 이 보들보들한 종이는 처음에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 대중화됐다.
지금도 전 세계 사람 4명 중 한 명만이 화장지를 쓰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지가 없는 화장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국화장실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1회 평균 93㎝, 여성은 118㎝의 화장지를 사용한다. 화장지가 우리 엉덩이를 구했다면 이제 지구의 건강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천연펄프 남용은 줄이고 재생 화장지 비율은 늘려야 한다.
다시 국방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거친 재생 화장지를 억지로 떠안아서 군인들 엉덩이를 희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녹색제품으로 인증받은 좋은 품질의 재생 화장지조차 외면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녹색제품 구매의무조차 외면하는 나라에서 무슨 탄소중립이나 순환경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