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1936년 인민전선과 오늘의 좌파연대

입력
2024.07.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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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비시 프랑스


영토 북동부 절반을 나치 독일에 빼앗긴 프랑스 의회는 1940년 7월 5일 남부 온천도시 비시(Vichy)에서 1차대전 영웅 필리프 페탱 원수에게 군통수권을 포함한 국가 통치권과 신헌법 제정 권한까지 부여했다. 569명 중 찬성 472명 반대 80명. 1870년 보불전쟁 패배 직후 출범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막을 내리고 공식 국명 프랑스국(French State)이 그렇게 출범했다. 1944년 8월까지 만 4년간 비시 프랑스국이 저지른 짓 때문에 흔히 괴뢰정부라 불리지만, 비시 프랑스는 프랑스 헌법에 따라 성립돼 미국과 영국 등 전시 연합국 정부도 외교적으로 인정한 합법 국가였다.

4년 전인 1936년 5월 총선거의 승자는 ‘인민전선’, 즉 좌파 연합이었다. 1930년대 실업 등 경제 공황과 노동자 시위의 혼란,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 정권 출범 등 국내외 정세 속에 프랑스 극우파는 34년 2월 의사당 무력시위 등을 통해 급진당 에두아르 달라디에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름만 급진당이었지 사실상 중도우파 정권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좌파 진영은 사회당과 공산당을 주축으로 급진당까지 아우르는 선거 연합을 형성해 5월 총선에서 압승했다. 승리의 지분을 요구하는 노동자 파업 등이 거세지자 인민전선 지도부는 ‘안정’을 선택, 쟁의를 힘으로 눌렀고 1939년 9월 공산당까지 불법화했다. 그렇게 우파는 정치 헤게모니를 다시 장악했고, 그들의 선택이 비시 프랑스였다. 비시 프랑스는 영국 해군의 알제리 해군기지 공격 직후인 1940년 7월 8일 영국과의 국교를 공식 단절, 중립의 가면을 벗고 ‘괴뢰’ 행보를 본격화했다.

극우파의 약진에 위기감을 느낀 에마뉘엘 마크롱 현 총리가 좌파 연대를 통한 안정적 집권 2기를 바라며 던진 의회 해산-조기 총선 승부수를 두고 1936년 인민전선의 운명을 불안하게 떠올리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