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반서구 안보기구 구축 나서… 북한이 큰 자산 될 것"[인터뷰]

입력
2024.07.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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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리 코지레프 미 엔디컷대학 교수 인터뷰
러시아국립대 교수 지내면서 외교정책 자문해와
"북한, 미국에 대한 일종의 억지력"


"미국은 러시아를 제2의 북한처럼 고립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배타적 정치는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적으로 손을 잡게 했고, 러시아는 그동안 서방과 일종의 소통도구로 여겨졌던 북한을 (협력국가로)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비탈리 코지레프 미국 엔디컷대학 교수는 지난달 27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러시아가 미국의 압박에 북한을 고리로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국립대 교수를 지낸 그는 러시아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러시아의 아시아정책을 자문해왔다. 그는 러시아의 입장에 완전히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이번 북러 회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는 하버드대 데이비스 유라시아연구센터와 페어뱅크 중국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도 지냈다.

코지레프 교수는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과 사실상 동맹수준의 군사협력 조약을 체결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20여 분간 미국의 '대러외교' 실패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시리아 등에서의 대리전은 모두 러시아를 동등한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은 미국의 외교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그는 최근 푸틴 대통령의 북한∙베트남 순방이 "새로운 안보협력 플랫폼 구축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라며 "보다 광범위한 유라시아 보안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 유럽을 비롯해 일본과 한국, 동남아시아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 미국 주도의 동맹이나 우호국 중심의 소다자 안보협력체계를 대체할 광범위한 안보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는 이란과도 포괄적 전략동반자협정 체결을 준비하고 있다.

코지레프 교수는 "북한은 오랜 세월 중국과 러시아에 서방과 대화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할을 해왔다"며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반패권주의로 반미세력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중에서도 북한은 일관적으로 러시아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가장 효과적 반서방 세력 중 하나"라면서 "서방에 대한 조직적 싸움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를 포기한 것일까. 코지레프 교수는 이번 북러회담이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한국이 먼저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연계를 강화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크렘린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에겐 한국이 미국 쪽으로 기울었단 신호였다는 것이다.

그는 비핵화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에 대해서도 푸틴 대통령이 핵교리를 수정해야 할 수 있다고 발언한 점을 들어 "비확산체제(NPT) 리더십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군축이 현실적이라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오히려 북한이 책임감 있는 체계를 갖추고 (한반도 문제를) 대화에 나서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지레프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구상하는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협력기구가 배타주의가 강한 미국 주도 안보협력체계를 대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한국이 해당 안보기구 산하 경제협의체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중앙아시아와 북극 등 유라시아 경제 이니셔티브에 한국이 동참한다면 러시아와의 관계도 관리하고 세계 평화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지레프 교수는 한반도 문제에 러시아와 중국의 입장이 다르다는 국내 전문가 분석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중국은 보다 광범위한 세계질서,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반서방 안보진영을 짜는 데 협력하고 있어 중국이 북러협력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