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때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문 끝에 누명을 쓴 납북어부 유족에게 국가가 정신적 피해배상(위자료)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불법 고문행위에 대한 반성 없이 피해자에 대한 허위 사실을 재차 퍼뜨린 전직 경찰관 이근안(86)에게도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 손승온)는 박남선씨 유족이 국가와 이근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4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국가는 유족에게 7억1,600여만 원을 지급하고 이 중 약 2억1,500만 원은 이근안과 공동으로 지급해야 한다.
박남선씨는 1965년 10월 서해 비무장지대에 있는 강화도 인근 함박도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인근 섬 주민 109명과 함께 북한에 나포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약 한 달 만에 귀환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1977년 12월 인천 강화경찰서는 돌연 그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연행해 불법 구금했다.
경찰은 박씨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가혹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때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투입됐다. 그는 박씨의 담당 형사로 붙어 물고문과 구타를 반복했다. 박씨의 아내 또한 간첩 행위를 방관한 혐의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결국 이근안의 의도대로 박씨는 "납북 기간 중 북한에 거주하는 숙부에게 포섭돼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공작금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실토했다. 그리고 1979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고, 1985년 2월 만기 출소 후 2005년 사망했다. 박씨의 배우자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박씨 부부가 쓴 누명은 이들 자녀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벗겨졌다. 무죄 판결이 선고되자, 자녀들은 이번엔 국가와 이근안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특히 이근안은 2013년 펴낸 자서전에서 박씨를 여전히 간첩으로 서술했는데, 이로 인해 '2차 가해' 논란까지 빚어졌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해 위법한 수사와 재판을 한 것"이라면서 "이근안은 소장을 적법하게 송달받고도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았으므로 원고들의 주장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