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밀었던 돌봄서비스,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에서 제외된 이유

입력
2024.06.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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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 음식점·편의점·택시운송업 선정
돌봄은 차등적용 필요 업종에서 제외해
차등 근거 모호하고 근로자 많아 뺀 듯

한국은행이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콕 짚은 ‘돌봄 서비스업’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경영계는 내년 최저임금 차등적용 후보 업종으로 돌봄 서비스업이 아닌 음식점·편의점·택시운송업을 제시했다. 경영계는 “차등적용이 보다 절실한 업종을 골랐다”는 입장인데, 노동계에서는 “차등적용 준비가 안 된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 따르면 사용자위원 측은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 업종으로 음식점업(한식·외국식·기타 간이), 택시 운송업, 체인 편의점을 꼽았다. 이들 업종의 임금 지급 여력이 떨어져 최저임금을 보다 낮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노동계가 반대하고 경영계가 요구하는 사안이다.

경영계는 돌봄 서비스업에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할 근거가 모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임위 사용자 측 한 위원은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중요한 근거는 '1인당 부가가치 창출능력'(생산성)인데 돌봄 업종은 조사에서 그렇게 낮게 나오지 않았다”며 “노인 돌봄 서비스 등은 정부에서 일부 제공하고 있어서 ‘사용자 측’인 경영계에서 차등적용을 주장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다른 사용자 측 위원도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 미만인 노동자 비율을 뜻하는 ‘최저임금 미만율’을 봤을 때 음식점·편의점·택시운송업이 가장 차등적용이 절실한 업종이었다”며 “업종을 너무 광범위하게 잡으면 (차등적용이)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했다. 돌봄 서비스업의 범위가 육아·가사·노인·장애인 등으로 광범위한 데다가 근로자 수도 많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지난 4월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보건·사회복지업 종사자는 228만 명으로, 최저임금의 직접 영향을 받는 노동자 65만 명보다 훨씬 많다.

노동계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지난 3월 한국은행이 가사 및 육아노동에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고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자고 제안해 촉발됐다. 노동계는 돌봄 서비스업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막기 위해 돌봄 노동자 출신인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서비스지부장과 전지현 민주노총 돌봄노조위원장을 근로자위원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최 지부장은 “돌봄 서비스업 차등 적용을 꺼내 놓고는 막상 내부적으로 따져 보니 내용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준비도 안 된 내용을 가지고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다만 최저임금제도를 우회해 각 가정이 외국인 노동자와 ‘가정 내 사적(私的) 계약’ 형태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것은 가능하다.

최임위는 전날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 문제를 놓고 7시간 넘는 마라톤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투표로 결정하자는 입장인데, 노동계는 투표 자체에 반대하고 있어 논의 마무리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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