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솔직하다. “미군 병사 단 한 명도 희생되지 않고서 러시아 전투력 50%가 축소됐다. 나치에 맞서 윈스턴 처칠을 지원한 이후 최고의 달러 지출이다.” 이보다 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배경을 찾기 어렵다. 그 여파로 나토는 하나가 되긴 했으나 정작 유럽, 서방은 침강 중이다. 우익 정치가 판을 칠 만큼 경제 사정은 내리막길이고 글로벌 빅테크 경쟁에선 밀려났다. 미국이라고 여유 부릴 처지는 아니어서, 정부 부채상환이 결국 국방비를 앞질렀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제국 쇠락의 징조에 이를 추가했다. 안보보다 부채상환에 비용을 더 지출하는 강대국은 위대함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퍼거슨 법칙’에서 스페인 프랑스 영국 오스만제국까지 예외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저성장 늪에 빠져 기로에 서 있지만, 해외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훨씬 낙관적이다. 이달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는 무려 48개국이 대표단을 보내 러시아 주최 회의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 러시아만 제친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 다음 가는 숫자일 만큼 국제사회 신호는 긍정적이다. 최근 우리 외교의 우군에는 미국외교협회(CFR)의 명예회장 리처드 하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국석좌 빅터 차가 가세했다. 워싱턴에서 입김이 센 이들은 주요 7개국(G7)에 한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미국 이익에 대한 계산도 있겠으나 우리의 역동성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유리해진 글로벌 환경에 주목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한국이 가만히 있어도 세계 4, 5위 국가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스톤 한국법인 회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누가 더 객관적이겠는가”라고 했다. 비관까지 할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국가 순위가 올라가도록 가만히 서 있지 못하는 데 있다. ‘코리아 피크론’이 나오고 잃어버린 30년의 일본까지 소환되는 이유는 물론 정치다. 최근 방한한 스탠퍼드대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는 우리 정치의 문제를 ‘파괴적 양극화’로 규정했다. 미국 정치처럼, 진영으로 쪼개져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 존재를 부인하고, 국가의 성공보다 상대의 실패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두 나라 현상’을 극복하려면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 때 권위주의를 버리겠다고 했으나 2년 만에 권위마저 상실했다. 이재명 전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통해 역대 보지 못한 민주당 일극 체제를 만들고 있다. 리더라면 의도하든 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초래될 파장들을 감안해 말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단천하기까지 하다. 새 주자를 자처하는 주요 인사들도 틀에 갇혀 일하던 골방의 인재들이고 보면, 대대로 인물이 나오던 집안에 대가 끊겨 버린 것 같은 게 우리 정치판 모습이다.
그럴수록 정치가 시선을 밖으로 돌려 봐야 한다. 요즘 쿠팡과 유튜브는 나 자신도 모르는 마음까지 읽어낸다. 확증 편향이란 부작용은 오히려 심리파악 성공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지금 정치는 이런 쿠팡과 유튜브의 알고리즘보다도 무능하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거나 알고도 무시해 민의 반영의 생태계는 무너져 있다. 대신 쿠팡의 알고리즘에 정치를 씌운다면 수십, 수백 개의 ‘정책’ 상품이 추천되고, 로켓배송이 될지 모른다. 고장난 정치보다 인공지능(AI)에 의사결정을 맡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맥락 없는 상상만은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