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만 지워도 지구 살린다고? "아뇨, 에너지 전환해야"

입력
2024.07.03 04:30
19면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메일 검색 영상' 디지털 활동도 탄소 배출원
데이터센터 한 곳이 6000가구만큼 전기 소모
AI 기술 발전에 국제적 '전력 확보 전쟁' 전망도
소소한 실천도 의미 있지만 결국 탈석탄 중요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메일함만 비워도 지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말 들은 적 있으신가요? 영국 탄소발자국 전문가 마이크 버너스 리에 따르면 스팸메일은 0.3g, 보통 이메일은 4g, 무거운 첨부파일이 붙은 이메일은 50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메일 데이터는 전부 정보기술(IT)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서버를 모아둔 데이터센터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사용됩니다. 데이터 저장과 송수신을 위해 24시간 가동해야 하고, 쉬지 않고 돌아가다 보니 과열된 공간을 냉각하는 데도 전기가 많이 필요하고요. 데이터센터 한 곳당 연간 전력 사용량은 평균 25GWh(기가와트시)로 4인 가족 6,000가구가 사용하는 양과 맞먹을 정도예요. 이메일뿐 아니라 검색, 메시지, 영상, 음악 등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해 있는 모든 디지털 활동이 그렇습니다.

이에 '이메일 지우기'는 불필요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됐어요. 정부나 기업도 자주 참여하는 캠페인이죠.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은 박해린(가명·30)씨는 실제로 메일함을 자주 비웁니다. 그는 "중국에서 비트코인을 대량 채굴하는 데 전기가 엄청 쓰였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고 (냉각이 쉬운) 바다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려고 한다는 뉴스를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고 했어요. 구글 검색보다 전기를 10배 쓰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사용도 자제하고, 안 읽는 메일은 틈틈이 구독 취소합니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회용품 안 쓰기, 에어컨 사용 자제하기처럼 온라인에서도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거죠.

반면 미심쩍다는 반응도 있지요. 강지우(가명·31)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가 탄소 배출과 얼마나 큰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디지털 데이터 용량을 좀 줄인다고 해서 티가 나겠나"라고 반문했어요. 그렇다면 데이터와 관련된 탄소 배출은 어떻게 줄여야 되는 걸까요.

전 세계 데이터센터, 2026년 日만큼 전기 쓴다?

우리는 흔히 '탄소 배출'이라고 하면 내연기관 자동차가 내뿜는 새카만 매연, 공장이나 석탄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을 떠올리기 마련이죠.

하지만 디지털 분야도 전기 사용이 막대한 대표적인 온실가스 '간접 배출원'입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전력 생산의 30%를 재생에너지가 차지했지만, 여전히 60%는 '기후위기 주범'인 화석연료에 의존하니까요. 세계은행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ICT)에 의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의 1.5~4%로 추산돼요. 이처럼 디지털 기기,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디지털 탄소 발자국'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집니다. 다들 알다시피 최근 '전기 먹는 고래'인 AI 기술이 급부상했잖아요.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만 해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량이 460TWh(테라와트시)였는데, AI와 가상화폐 영향으로 이 수치가 2026년 최대 1,000TWh까지 폭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국제적으로 AI발(發) '전력 확보 전쟁'이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죠.

'전기 덜 먹는 데이터센터'가 생기면 좋겠지만, 당장은 쉽지 않을 듯해요.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는 전기료가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일반 전산실과 비교하면 효율을 더 높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최적화된 상태"라며 "한국은 아직 무탄소 발전 비중이 낮아 (탄소) 간접 배출을 줄이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기관 등은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디지털 탄소발자국 감축 방법으로 △절전모드로 디지털기기 사용 △클라우드 등 불필요한 데이터 삭제 △실시간 스트리밍 대신 다운로드 △사용하지 않는 기기의 전기 플러그 뽑기 등을 제안해요. 넷플릭스·유튜브 등에서 기본 화질로 영상 보기(영국왕립학회에 따르면 4K 해상도 영상은 일반 화질보다 탄소를 8배 뿜어요), 챗GPT는 꼭 필요할 때만 쓰기 등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고요.

"디지털기기 더 오래 쓰고, 저탄소 발전해야"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소소한 실천들이 '의미는 있어도 지구를 살리는 데 절대 충분하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메일만 지우고 '내 할 몫 다 했다'라고 생각했다가는 기후재난으로 향하는 폭주 열차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죠. 보다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IEA에서 에너지 정책 분석가로 일한 조지 카미야는 2020년 12월 '영상 스트리밍에 의한 탄소 발자국 : 기사 헤드라인 팩트체킹'에서 '이메일 지우기'는 실제 탄소 배출 저감 효과에 비해 과하게 언론의 주목을 받은 면이 있고, "영상 스트리밍도 영화관에 자가용 타고 가는 것에 비하면 탄소 배출이 비교적 적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더 중요한 실천 과제로 "전기를 덜 쓰는 작은 화면 기기를 쓰거나, 기기를 덜 자주 바꾸는 게 도움이 된다"며 "모바일 기기의 전 생애주기 탄소 배출량 중 80%가 생산 단계에서 배출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선 회차에서 소개한 '수리권 담론'처럼, 물건을 쉽게 사고 질렸다고 쉽게 버리는 게 아니라 오래오래 아껴 쓰고 고쳐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관련 기사:"5만원이면 고치는데, 140만원 주고 새 폰 사야 될까요?")

카미야는 "전기차, 영상 시청처럼 전기 사용 수단에 의한 탄소 배출은 결국 (그 나라에서) 전기가 어떻게 생산됐냐에 가장 크게 좌우된다"고도 지적했어요. 보통 30분 넷플릭스를 보면 자동차 100m 주행한 만큼 탄소가 배출되는데, 전력 생산의 90%가 저탄소 발전인 프랑스에서는 똑같이 영상을 봐도 10m 주행한 만큼만 탄소가 나온다면서요.

결국 기후재난을 막으려면 탈석탄과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거죠. 물론 '이메일 지우기'보다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지만, 함께 고민해야 지구도 살리고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