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선수 등 비리 축구인 100명 기습 사면, 아시안컵 졸전과 4강 탈락, 그리고 대표팀 내분, 여기에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4개월간 대표팀 감독 공백까지…’
지난 1년여간 대한축구협회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 기간 축구협회의 행정력을 성적으로 산출한다면 F학점이 분명하다. 일반 기업이라면 각 사안마다 대표이사나 고위 임원들이 책임지고 갈려 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렇다면 축구협회는 누가 책임을 졌을까. 아무도 없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F학점 성적에도 눈과 귀를 닫은 채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황선홍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국가대표팀 임시 감독 겸직 결정 후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했던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황 감독은 K리그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굳이 책임진 인물을 찾자면 해임된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 전 감독 정도가 유일한데, 막대한 위약금을 챙겼으니 그마저도 손해를 본 것이 없다. 결국 1년여 동안 벌어진 전대미문의 한국 축구 위기 상황은 선수와 팬들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하지만 더 울화통 터질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고구마 100개’의 답답함을 선사해 온 정 회장이 한국 축구의 새로운 4년을 다시 지휘하려 한다. 12년간 정 회장의 임기를 되돌아보면 한국 축구는 발전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는 평가가 합당하다. 축구인들까지 나서서 정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의견과 성명을 내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요지부동이다. 수많은 비판과 개선 요구에도 단 한마디의 해명조차 하지 않는다. 소통도, 개혁의지도 없는 정 회장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4선만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이제 답은 명확하다. "정 회장의 시대는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이다.
하지만 또다시 ‘고구마 전개’다. 정 회장에게 맞서 보겠다고 나서는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축구 팬들은 정 회장의 4번째 회장 무혈 입성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80년대 이후 줄곧 재계 인사들이 축구협회장을 맡아왔기 때문에 선수나 축구 행정가 출신들이 선뜻 회장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현실은 그들의 우려와 다르다. 과거와 달리 기업가 한두 명의 기여에 의해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조직이 아니게 성장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세계적 스타들의 활약 속에 국내 A매치는 이제 표를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 광고주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포츠 단체로, 충분히 자생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협회 예산에서 파트너 기업 후원금, A매치 수익 등 자체 수입은 총 635억 원으로, 일반 예산의 63%를 차지한다. 때문에 예전처럼 꼭 기업인이 회장이 되지 않더라도 재정적인 부담은 크지 않다. 이제는 젊은 축구인들도 충분히 협회를 이끌 수 있다.
12년 뒷걸음질 쳤던 한국 축구가 이제라도 문제를 타파하고 성장을 위해 달릴 시점이다. 한국축구의 변화를 위해 나서줄 인물이 필요하다. 새로운 얼굴의 제55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후보자가 하루빨리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