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사정권이 군부 측 공격으로 승려가 숨졌다고 공개하고 사과했다. 2021년 2월 쿠데타 발발 이후 수많은 민간인이 군부 총칼에 희생됐지만 정부가 이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당초 사고를 저항군 책임으로 돌리려 했지만 진실이 드러나자 불교계 반발을 의식해 발 빠른 수습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26일 미얀마나우 등에 따르면 군부 종교문화부 띤우린 장관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저명한 고승(高僧)이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는 슬픈 사실을 알게 됐다. 깊은 슬픔을 느끼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승려를 태운 차량은 종교적 상징이 없는 개인 차량이었고 과속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철저한 조사로 엄중히 조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과는 민 아웅 흘라잉 군부 최고사령관 명의 글을 장관이 대독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앞서 지난 19일 낮 미얀마 제2 도시이자 현지 최대 종교 문화 중심지 만달레이에서 불교계 원로 승려 바단타 무닌다비완사(78)가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남부 바고시(市) 유명 대형 불교 사찰 ‘윈 네인미타욘’ 주지이자 미얀마 불교계 최고 의사결정 기구 ‘상가 마하 나야카 위원회’ 위원이다.
사고 당시 무닌다비완사 일행은 불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당초 군정은 저항 세력인 시민방위군(PDF)이 설치한 지뢰 폭발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생존한 승려가 SNS에 “군부가 공격했다”고 폭로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생존자는 당시 일행이 탄 차량이 검문소를 지나자 군부 경찰이 7, 8발의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인구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명망 높은 스님을 겨냥한 이번 총격 사건 이후 주요 도시 곳곳에서는 승려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그의 유해가 안치된 사찰에는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만달레이 승려 협회는 총격 사건을 ‘테러’라고 부르며 정권 보이콧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친정부 성향 원로 승려들이 “이번 공격을 잊고 (군부를) 용서하라”고 언급했다가 더 큰 분노를 사기도 했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자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부처 가르침을 위해 계속 봉사할 것임을 겸손하고 정중하게 말씀드린다” 등의 표현을 쓰며 ‘불심 달래기’에 나선 셈이다.
미얀마나우는 “군정이 정당한 이유 없이 민간인을 살해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라고 전했다. 인권단체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군부가 살해한 민간인은 5,300명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