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에 없으면 큰 일, 인격 존중 당연"… 이주노동자와 상생하는 지역사회

입력
2024.06.28 14:00
8면
[3부: 이민정책-②문화적 차이 넘으려면]
이주노동자와 지역 축제 함께 한 삼성면 주민들
지원사업 확대·소통 활성화 나서는 지차제 늘어
"노동력 공급 외 사회 일원 되는 정책 마련해야"

편집자주

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는 처음인데, 서로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5일 충북 음성의 대표 축제인 '음성품바축제'에서 만난 마리벨(35)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필리핀에서 한국에 온 지 2년 6개월이 된 그는 고용허가제(E-9) 비자를 받아 음성군 삼성면 소재 가구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에 주민 초대를 받아 필리핀, 태국 등에서 온 15명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축제에 참여했다. 축산업으로 유명한 동네 특징을 살려 소와 돼지 머리띠를 착용하고 두 볼에 주근깨와 붉은 칠을 한 이들은 지역주민들과 어우려져 축제를 맘껏 즐겼다. 필리핀 출신 제이비(32)는 밝은 표정으로 "모두 똑같은 분장을 하고 행진을 준비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고 전했다.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이주민들과 소통을 늘려가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도모하는 지역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음성이다. 음성은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 지난달 31일 기준 음성 거주 외국인은 전체 인구(10만3,404명)의 12.7%인 1만3,190명이다. 비자가 만료된 미등록 이주민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삼성면에 사는 이주노동자는 1,999명으로, 인근 중소 제조업 공장에 다니거나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품바 축제에 함께 가자고 이주민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지역 주민들이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낸 서대석(59)씨는 "주민들과 이주민들이 좀 더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살아가는 관계로 거듭나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선희(67)씨도 "농번기에 이분들(이주노동자) 없으면 큰 일 난다"며 "고마운 분들과 축제를 함께해 뜻깊다"고 미소지었다.

이주노동자들도 지역 주민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애쓰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시내를 돌면서 청소나 방범 봉사를 하고, 주말마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 규범 등을 배운다.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고소피아 소피아외국인센터 센터장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거리를 두던 주민 분들이 이제 먼저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주노동자도 다 같은 '사람'

평소 일터에선 지역 주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달 30일 삼성면의 한 돼지농장을 찾았다. 넓은 인삼 밭과 굽이진 길을 지나 도착한 돼지농장에는 6명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농장주 김동남(77)씨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되는 농장의 하루는 오후 5시면 끝난다. 돼지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는 등 특이사항이 없다면 야간과 주말은 쉰다.

온몸에 소독을 마친 뒤 장화를 신고 들어간 돼지 농장은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각 축사에는 온도와 습도, 황화수소 및 암모니아 농도를 측정하는 센서가 부착돼 적정 상태로 관리 중이었고, 이주노동자들은 배정된 축사에서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분만사에서 새끼 돼지의 건강 상태를 살피던 체크(24)는 "이곳에서 일한 지 3년 째인데 힘들진 않다"면서 "돈도 꽤 많이 번다"고 뿌듯해했다. 빈 축사를 수세하던 나란(25)에게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묻자 "우리가 불편한 걸 말하면 사장님이 다 도와주니까 힘든 건 없다"고 답했다.

농장주와 이주노동자들은 가족들의 근황을 공유할 만큼 각별한 사이가 됐다. 김동란씨는 이주노동자 중 누가 언제 결혼 했는지, 아이는 몇 명이나 있는지 등을 훤히 꿰고 있었고, 이주노동자들 역시 김씨 가족들과 식사를 하거나 노래방을 가는등 격없이 지낸다. 김씨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체류자격을 변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최근 특정활동 비자(E-7)를 받아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된 비놋(31)은 "비자 변경 비용을 사장님이 모두 대줬다. 본국에서 아내를 데려와 함께 살 수 있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급여와 식대, 숙식 환경 등 노동 조건 전반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웃도는 급여에 더해, 월 150만 원의 식대를 받는다. 각종 조리 기구와 냉장고 등이 비치된 공용 주방에선 장을 봐온 식자재로 고향 음식을 요리해 먹을 수 있고, 숙소 역시 침대와 옷장 등이 구비된 1인 1실로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됐다. "일하는 동안 임금이 밀리거나 사장님이 언성을 높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도 인터뷰를 위한 립 서비스로 들리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을 살뜰히 챙기는 이유에 대해 김동남씨는 "우리나라 국민과 똑같은 사람으로 보고 인격을 존중해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자체 중심 '상생 시도' 이어져

이주민들과 상생하려는 노력은 다른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 수원시는 3일 '찾아가는 이주민 상생토크 행사'를 열어, 분리수거 등 기초 생활 질서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지 지역 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경기 고양시의 경우 올해 한국어 및 다문화 교육, 결혼이민자 취업지원 등 총 31개의 외국인 관련 사업을 계획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주민 지원 정책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이주 정책 수립 시 노동력 공급 차원에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이주민들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사회통합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 역시 "지자체가 중심이 돼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생애주기에 부합하는 맞춤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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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5000원 받으려 포천서 인천으로··· 준비되지 않은 노인 공화국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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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의료조력사 찬성 70% 달하지만… 연명 치료 중단 문턱은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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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천편일률 요양병원 임종 싫다"… 한국인 죽음의 질 높여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1811100001092)
  3. ③ 이민정책, 지금이 골든아워
    1. • 한국서 나고자란 이주청소년... 취업 못하면 나가라니 '무슨 날벼락'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611000004892)
    2. • "사장님 나빠요" 여전한데... 외국인 노동자 기댈 곳, 국가가 돈 끊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611020004100)
    3. • 여기선 쫓아내고, 저기선 들여오고... '외국인 정책' 이 모순 어쩔 건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61101000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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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농번기에 없으면 큰 일, 인격 존중 당연"… 이주노동자와 상생하는 지역사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610000002723)
  4. ④ 이중위기 맞은 교육
  5. ⑤ 정치가 정권 한계 넘어서려면


음성= 김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