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사망자 김모(52)씨 아내가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며 소리쳤다. 김씨는 사망자 23명 중 가장 먼저 신원이 특정된 한국인 희생자다. 유족은 전날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이곳으로 달려왔지만, 꼬박 하루 동안 김씨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다. 부검 전에는 시신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 다음 날 정오가 돼서야 허락된 '마지막 인사' 시간은 5분이 전부였다. 경찰관과 장례식장 직원에게 여러 차례 읍소한 끝에 가장의 시신을 마주했다. 자녀들은 "아빠"를 부르며 울부짖었고, 휘청이던 아내는 다른 유족의 부축을 받아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아직 가족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내 남편, 내 자식이 어디에 안치돼 있는지를 알지 못해 화성 시내 장례식장 곳곳을 찾아 헤맸다. 다시 화재 현장으로 돌아온 이들도 있었는데, 이미 잿더미가 된 현장 통제선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성들이 주저앉아 "어떡해,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어"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입을 틀어막고 간신히 울음을 참는 이들도 있었다.
딸이 아리셀 공장을 다녔다는 중국인 채모(73)씨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딸을 찾지 못했다. 그는 '목걸이를 단 시신이 안치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딸도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며 경기 시흥시를 떠나 화성시 함백산추모공원으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러나 장례식장은 "확인이 어렵다"며 채씨를 돌려보냈다.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먹어 힘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피해통합지원센터가 마련된 화성시청으로 또 차를 몰았다. "거기 가면 딸 행방에 대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칠순이 훌쩍 넘은 노인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족의 행방을 찾지 못한 다른 유족들도 채씨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피해통합지원센터로 찾았다. 뭐든 돕겠다는 화성시의 말을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한 사망자 신원 확인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유족들이 원하는 대답을 바로 얻긴 힘들었다. 오전 10시쯤 시청을 방문한 중국동포 남성은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대책을 이렇게 안 세웠나"며 분개했다. 유전자(DNA) 제공을 위해 화성서부경찰서를 찾은 유족들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일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수습된 시신은 대부분 훼손 상태가 심해 23구 중 2구의 신원만 밝혀졌다. 이 중 첫 번째로 김씨가 확인됐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40대 남성의 신원도 확인됐다. 화성시 관계자는 "합동분향소는 서신면 다목적체육관에 차릴 계획"이라며 "유가족과 분향소 설치 등과 관련해 협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