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영화 ‘하이재킹’이 개봉하며 여름 극장 흥행 대전이 시작됐다. 한국 영화가 일주일 간격으로 1편꼴로 극장가를 찾으며 8월 중순까지 개봉 릴레이를 이어간다. ‘하이재킹’과 ‘핸섬가이즈’(26일 개봉), ‘탈주’(다음 달 3일)가 초여름 흥행 다툼을 벌인다. 세 영화는 내용과 형식이 각기 크게 다르나 제작비 대비 알차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웬만한 완성도를 지녔고 상업성까지 갖췄다.
‘하이재킹’은 1971년 실화를 바탕으로 항공기 탈취극을 스크린에 펼친다. 공군 출신 여객기 조종사 태인(하정우)이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향하려는 용대(여진구)에게 맞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용대가 비행기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사제폭탄을 들고 승객을 위협하는 모습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태인이 승객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이 관객 마음을 흔든다. 연좌제 피해자의 사연이 포개지며 시대의 아픔을 소환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항공 재난물이라는 점만으로도 눈길을 잡는다. 추락 위기에 놓인 여객기 상황을 세밀히 묘사했다. 수요일 또는 목요일 개봉하는 국내 영화계 관행과 달리 금요일에 첫선을 보였다. 23일까지 49만 명이 봤다. 관객 수가 쪼그라든 국내 극장가 상황을 감안하면 선전한 흥행 수치다. 제작비로만 140억 원이 들어갔다.
‘하이재킹’은 항공 재난물의 장르적 규칙에 충실하다. 실화를 크게 변형하지 않고 과도한 허구를 보태지 않는다. 모범답안 같은 구성이 되려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적당한 웃음과 적당한 감동, 적당한 재미를 갖췄으나 내용과 전개 방식은 지극히 익숙하다. 김성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핸섬가이즈’는 올여름을 넘어 올 한 해 가장 파격적인 한국 영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코미디를 주요 장르로 삼고 정통 공포물과 오컬트 요소를 더했다.
천하제일 미남이라 서로 치켜세우는 단짝 재팔(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스크린 중심에 선다. 둘이 시골마을 숲속 폐가나 다름없는 가톨릭 사제의 사택을 구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재팔과 상구가 주변에 놀러 온 불량한 젊은이들과 갈등을 빚는 가운데 악마가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난장이 폭소를 제조해낸다. 관성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당혹스러울 내용과 전개다.
파격을 받아들이면 박장대소할 장면이 여럿이다. 특히 파출소 최 소장(박지환)의 ‘꺾기춤’에서 웃음을 참을 관객은 거의 없을 듯. 캐나다 코미디 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2010)이 원작이다. 제작비는 49억 원으로 올여름 시장 출사표를 던진 한국 영화 중 가장 적다.
‘핸섬가이즈’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약점을 지녔다. 코미디와 공포 등이 뒤섞인 구성이 취향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가 사고로 이어지고, 악령을 깨우게 된다는 이야기 전개가 지나친 짜맞추기로 보일 수 있다. 남동협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15세 이상 관람가.
‘탈주’는 한국에서 새 삶을 살고 싶은 북한군 병사 규남(이제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규남의 탈북을 막으려는 북한군 엘리트 장교 현상(구교환)과 규남의 대결이 이야기 뼈대를 이룬다.
북한이라는 억압적인 체제가 배경이나 이념은 탈색된 영화다. 출신성분이 불량한 흙수저 젊은이 규남과 고위층 자제인 금수저 현상을 통해 21세기 청춘의 보편적인 처지와 고민을 묘사한다. 북한 청년들 사연이라고 하나 한국 청춘들이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규남이 “실패할 자유”를 얻기 위해 혼신을 다해 한국으로 도망치려 하고, 현상이 규남을 필사적으로 쫓으면서 빚어지는 긴장의 밀도가 꽤 높다. 제작비는 80억 원이다.
이야기가 다소 단순하다는 게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현상을 제외한 인물 대다수가 입체적이지 않다. 과감한 생략이 박진감을 주나 이야기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과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2023)로 주목 받은 이종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