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인 연구 중단에... 국가는 비용 매몰돼 손해, 연구자는 성장 기회 잃어

입력
2024.06.25 04:30
10면
계속과제 175개 줄줄이 축소·중단
"예산 사유면 포기 허용" 지침까지
황정아 의원 "R&D 추경 편성해야"

편집자주

이공계 인재가 기초과학과 첨단산업 발전에 기여할 리더가 될 때까지 성장 단계별로 지원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을까요. 한국일보는 "사다리가 끊어진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수억~수십억 원 규모의 국고가 투입된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들이 도중에 중단되면서, 결과를 도출할 수 없음은 물론 비용마저 매몰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수년간 꾸준히 지속되며 사업화의 기초를 쌓거나 연구자 성장의 토대가 돼야 할 대규모 연구과제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손해만 남기게 됐다는 것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R&D 예산이 삭감된 사업 중 연구 수행 기간이 1년을 넘긴 계속과제가 있음에도 예산이 줄어든 사업은 175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엔 전년 대비 90% 넘게 예산이 깎인 경우도 있었으며, 일부는 결국 연구가 아예 중단됐다.

우주·환경·생명 분야 난제를 해결하고자 2021년부터 예산이 투입된 '방사선 이용 미래혁신 기반 기술연구' 사업 중 10개 기관이 참여해 35억 원 규모의 연구를 진행한 일부 과제는 올해 전면 중단됐다. 감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백신 원천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수행된 '감염병 차세대 백신 기초원천 핵심기술개발 사업'에서도 16억 원을 쏟아부은 과제가 중단됐다. 이 외에도 연구책임자들끼리의 간담회만으로 연구를 축소하거나, 일부를 조기 종료한 경우도 있었다.

과기정통부가 아예 지침을 통해 연구 중단의 '퇴로'를 열어주기도 했다. 과기정통부는 1월 각 부처와 기관에 'R&D 예산집행 관련 처리기준' 지침을 내려보냈다. '연구비 감액 규모가 상당하여 연구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연구기간 단축 또는 연구중단을 허용'한다면서, '연구자 귀책이 아닌 예산 사정으로 상호 협의를 거쳐 연구 수행을 포기하는 경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성과를 독려하며 연구비를 줬던 정부가 갑자기 더는 못 주니 일을 끝내라고 등떠민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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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형적인 연구 중단이 현장에 미치는 부정적 여파는 매우 크다는 게 현장의 중론이다. 연구자들은 연구 성과를 상업화하거나 해당 연구를 발판으로 더 발전된 연구를 이어갈 기회를 잃게 됐다. 기초연구연합회장인 정옥상 부산대 화학과 교수는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R&D라서 예산이 투입됐을 텐데, 갑자기 중단되면 연구자뿐만 아니라 국가 입장에서도 몇 년간 지원한 결과가 매몰돼 손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내년 R&D 예산을 예년 수준으로 '원복'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고, 조만간 주요 R&D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미 중단된 연구에 예산이 추가 투입될지는 미지수다. 더불어민주당은 'R&D 추경'을 추진, 계속과제 예산을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정아 의원은 "재정 효율화를 하겠다며 이미 투자된 비용까지 매몰시키는 정책에 연구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미래를 지키기 위해 R&D 추경으로 긴급자금을 수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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