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외압의혹 특별검사 추천을 대법원장에게 맡기자고 제안하자, 법조계에서는 묘수라는 평가와 법원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했던 전례가 있었고, 정당 추천을 배제하면 정쟁으로 비화한 이 문제에 중립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게 찬성 쪽 논리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법원을 정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 반대 쪽의 핵심 주장이다.
한 전 위원장 주장을 살펴보려면 과거 특검 후보 추천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정사상 최초 특검인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로비 특검(1999년) 이후 특검 후보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게 관례였다. 이후 출범한 9명의 특검 중 5명은 변협, 4명은 대법원장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다. 대북송금(변협)이나 BBK(대법원장) 등 정치적 이슈에 해당하는 특검도 제3자 추천을 받았다.
정당이 특검을 추천한 것은 2012년 내곡동 특검 때부터였다. 당시 특검 도입을 주장하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특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만 줄 것"이라는 이유로, 민주당이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는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이후부터는 야당(국정농단·드루킹)이나 국회 교섭단체(이예랑 중사) 등 정치권이 추천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특검법마다 추천 주체가 달라지는 것에 문제 제기도 있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최서원씨가 국정농단 특검법에 대해 낸 헌법소원 심판에서 "특검 추천권은 국회가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변협 회장, 대법원장, 정당 누가 추천하든 위헌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 전 위원장이 제안한 대법원장의 특검 추천은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평가가 꽤 있다. 거대 야당이 법안을 처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매번 거부권을 행사하는 꽉 막힌 정국 상황에서, 또다시 야당 추천 특검법을 통과시키면 거부권이 이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논리다.
여기에 더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여야 양쪽에서 대체로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제3자 추천'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합의로 하면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에서는 대법원장 추천이 공정성을 위한 적절한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전원 교수 역시 "편향성을 가진 인사가 특검에 임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판결을 해야 할 사법부 수장이 특검을 추천한다는 것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문제 될 것 없다"는 의견이 많다. 대법원장의 특검 추천은 △입법부가 해당 법을 통과시킬 때만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최종 특검 임명은 대통령이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같은 이유로 2007년 BBK 특검법(대법원장 추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대법원장은 특검 후보자를 대통령에 추천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소추기관과 심판기관의 분리라는 근대 형사법의 대원칙이나 권력분립 원칙 등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법부 수장이 특검을 추천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는 "헌재의 결정은 삼권분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법적 판단일 뿐, 재판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선 여전히 문제"라며 "특검이 기소할 경우, 대법원장이 추천한 사람이 사건의 일방 당사자가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검이라는 '정치 소용돌이' 한복판에 대법원장을 집어넣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 측면에서도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라며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했다. 또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달리, 선거를 거치지 않은 권력인 대법원장이 이런 막중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법원 내부에서도 걱정이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안 그래도 요즘 정치적 사건이 많이 배당되는데, 특검 추천이라는 민감한 역할까지 하는 것은 사법부의 중립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걱정했다. 다른 판사도 "특검이 기소한 사건을 대법원장이 직접 재판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