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은 보고를 앞둔 직원들에게 파워포인트 작업보다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현황’에 대해 이메일을 보내라고 주문한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실제 그는 경영진 55명과 일대일로 토론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진 자료를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에 올려놓는 회의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워포인트는 등장부터 지금까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87년 파워포인트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파워포인트는 유명인이나 권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2003년 그 유명한 미국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은 미국인에게 이라크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파워포인트를 이용했다. 당시 그의 45개 슬라이드는 매우 특이했고, 현대적이었으며, 전문가로서 그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데 흠이 없었다. 한때 전 세계 12억 개가 넘는 컴퓨터에 파워포인트가 탑재됐다. 파워포인트의 기원과 성장, 변천사, 그리고 오늘의 의미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이 유행하기 시작한 1987년, 파워포인트는 시장에서 유용하면서 잘 팔리는 유일한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개인용컴퓨터(PC) 구입과 사용의 급격한 증가는 파워포인트 탄생에 절묘한 시운을 선사했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프레젠테이션을 더 잘하려는 기업 오너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파워포인트보다 나은 것은 없었다. 윈도 오피스에 익숙한 사람들은 파워포인트가 빌 게이츠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그 효시는 포어소트(Forethought)라고 불리는 회사에서 로버트 개스킨스가 개발해 출시한 ‘프레젠터’였다. 이는 현란한 그래픽, 다양하고 굵은 글씨체, 슬라이드 쇼를 보여주는 요즈음의 파워포인트와 기본적으로 달랐다.
프레젠터는 다양한 상품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중 1987년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S)에 1,400만 달러에 인수되면서 그 기능을 보다 강화했다. 빌 게이츠는 기업 소프트웨어 수요의 팽창과 사무 자동화 추세를 보면서 파워포인트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한 것이다. IBM이 PC 시장에 진출할 때 필요한 게 운영체계(OS)였고, IBM에 OS를 공급한 회사가 MS였다. MS와 IBM의 OS 거래는 정보·통신(IT) 기업 역사상 한 획을 그었다. 당시 MS는 애플 같은 회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던 신생 중소기업이었고 IBM은 당대의 거인이었다. MS는 IBM에 MS DOS를 납품하면서 로열티도 받지 못해 큰돈을 벌지 못했다. 다만 MS는 MS DOS를 IBM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납품할 수 있다는 중요한 권한을 확보한다. 앞을 멀리 내다보지 못한 IBM의 실수였다. IBM PC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제조사들이 IBM PC와 호환이 가능한 PC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핵심이 바로 MS DOS의 사용이었다. 그들에게 MS DOS란 소프트웨어가 ‘킬러 앱’이었다.
컴팩(Compaq) 같은 회사가 IBM보다 저렴하면서도 IBM PC와 거의 똑같은 PC들을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IBM은 자신의 PC를 복제하는 수준의 기업들에 PC 시장을 완전히 내주게 된다. 반면 MS는 PC 시장에서 인텔(Intel)과 함께 가장 중요한 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IBM은 MS DOS의 확산을 뒤늦게 후회하며, 1985년부터 독자적 OS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개발을 MS에 맡겼는데,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기술 기업 간의 애증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곰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곰의 등에 올라타야 했을까? MS가 윈도를 발표하면서 IBM과 MS의 10년간 파트너십은 끝이 나고 IBM은 PC 사업을 접는다. 전형적인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서 다윗에 이긴 예로 기억된다. 오라클(Oracle)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MS에 PC시장을 내준 IBM의 이야기를 ‘일천억 달러 실수’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MS의 파워포인트는 1997년부터 평균 2년마다 그 기능이 다양하게 향상됐다. 그 결과 2012년 MS는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95%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파워포인트가 이렇게 각광을 받으며 MS에 큰 수익을 가져다 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여러 이유를 분석하지만, 숙련된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파워포인트를 통해 시간과 노력을 줄이면서 창의적인 모습을 시현한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프레젠테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를 이용하면 쉽게 주제를 발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도 인기를 얻은 주요 원인이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하면 이전보다 훨씬 멋진 모습으로 주제를 발표할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학교, 대학, 스타트업, 각종 기업, 정부에서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일이다. 세계 정상을 비롯한 지도자, 유명 기업인들이 이를 사용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따라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을까. MS는 2012년에 전 세계적으로 초당 350건의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이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여전히 파워포인트가 인기지만 이를 싫어한 인물도 많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파워포인트 금지령을 내렸다. 그에게 뭔가를 제안하려면 산문체의 글을 적어내야 한다. 스피드와 실용성을 중시한 그는 현란한 그래픽이 있는 슬라이드보다 확실한 내용이 있는 텍스트를 선호했다.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의 비밀'의 저자 카마인 갈로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베이조스를 파워포인트의 종결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두뇌가 정보를 처리할 때 단어만 사용하는 것보다 이미지와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권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를 왼쪽, 단어를 오른쪽에 제시하는 데 베이조스가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렇다면 베이조스는 파워포인트 혐오자일까 극찬자일까? 베이조스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프레젠테이션은 들을 때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그럴듯함으로 인해 결함이 생기고 불완전한 아이디어들이 마구잡이로 양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할 때 파워포인트의 대안으로 메모 작성을 권유했다. 베이조스는 일일이 넘겨야 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쇼의 함축적 표현 대신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건너뜀이 없는 문서를 선호한 것이다.
아마존은 기업 문화에서 발표에 대비한 여러 제한과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없애고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한다.
"발명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생각하기와 실행하기다. 실행하는 이들은 대부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이들은 좀처럼 실행하지 않는다. 놀라운 사실은, 아마존은 그 두 가지 모두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메모 작성은 생각만을 위해 이뤄지는 게 아니다. 메모로 생각과 실행이 동시에 행해질 때, 비로소 혁신은 완성된다.”
파워포인트의 전설 하면 스티브 잡스가 아닐까? 그는 프레젠테이션이야말로 스토리를 전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그는 훌륭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었다. 청중들이 그의 발표를 TV쇼처럼 느끼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음악과 유머를 곁들여 오락적 요소도 더했다. 그는 따분한 슬라이드 쇼 일색이었던 프레젠테이션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 놓은 신기의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에 청중이 빠져들도록 슬라이드에 빼곡하게 담긴 글자를 지양하고 한두 줄의 핵심 키워드와 한두 장의 사진만 넣었다. 그에게 파워포인트는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었다.
이제 프레젠테이션의 역사가 달라지고 있다. 어도비, 미리 캔버스의 템플릿이 인기다. 어디 그뿐인가? 인공지능(AI)이 주제에 맞게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주는 ‘톰(Tome)’ 사이트는 챗GPT 기반으로 텍스트만 입력하면 프레젠테이션 문서를 멋지게 생성한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는 MS워드와 파워포인트, 엑셀 등 주력 제품의 AI 버전을 출시해 구글과 아마존 등 경쟁사를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MS의 저력에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우리 고유의 생각과 말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