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탓에 약 바꿨는데 70만 원 모두 자부담"… 애타는 중증 아토피 환자들

입력
2024.07.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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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신약 중 하나만 보험 적용
교체투여 허용 않는 경직된 제도
학회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는데
정부 묵묵부답... "불합리한 차별"

어릴 때부터 아토피피부염을 앓아온 29세 A씨는 상태가 중증으로 악화하면서 2년 전 신약 '듀피젠트'를 맞기 시작했다. 한 달에 150만 원이나 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돼(산정특례) 약값의 10%만 냈다. 그런데 1년 정도 맞아보니 나아지질 않고 결막염, 홍조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의사는 작용 원리가 다른 신약 '린버크'를 써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약값이 모두 A씨 부담이다. 린버크는 원래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약인데도 A씨는 한 달에 약값 70만 원을 모두 자부담으로 내며 1년째 린버크를 복용하고 있다.

이는 중증 아토피피부염의 독특한 신약 건강보험 급여 체계 때문이다. 듀피젠트와 린버크를 포함해 국내에 출시된 중증 아토피피부염 신약은 총 5가지인데, 환자는 이들 중 딱 한 가지만 선택해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에 선택한 약이 잘 듣지 않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등 의학적 이유가 있어 약을 교체해도 교체한 약은 모두 자비로 써야 한다. A씨는 "교체한 약이 무려 4배 이상 비싸다. 더 맞는 약을 찾았는데 단지 보험 때문에 다시 예전 약으로 돌아갈 수 있겠나"라며 답답해했다.


3일 제약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환자와 전문의들 대다수가 중증 아토피피부염의 신약 교체투여에 건강보험 적용을 허용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박조은 중증아토피연합회 대표는 "점점 더 좋은 신약들이 나오는데, 부작용이 나타나도 처음 선택한 약만 보험이 적용되는 규정을 고수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하소연했다.

교체한 약에도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한 방법이 있긴 하다. 첫 번째 약을 중단하고 3개월간 신약이 아니라 스테로이드 제제 같은 기존 면역억제제를 맞고 증상이 악화한 경우에는 교체하는 신약에 보험을 적용해준다. 환자로선 교체를 원하는 신약에 보험을 적용받기 위해 일부러 증상이 나빠지는 치료를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중증 아토피피부염은 2018년 혁신신약 듀피젠트가 국내 허가를 획득하면서 치료 패러다임이 전환됐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하던 환자가 한 달에 2번 주사로 일이나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20년부턴 듀피젠트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가 내는 한 달 약값이 15만 원으로 줄었다. 이후 린버크를 비롯한 신약 4가지가 잇따라 허가를 받고 보험 적용이 시작되면서 치료 방식이 더욱 다양해졌다.

그러나 교체투여에 건강보험 적용을 불허하는 제도 때문에 치료의 다양성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당초 정부는 불허 이유로 교체투여의 의학적 근거 부족을 들었다. 이에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는 지난해 11월 아토피피부염 신약 교체투여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이를 근거로 올 3월 교체투여에도 보험 급여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4개월 넘게 지났는데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관련 학회와 전문가 의견을 고려해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최응호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장(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은 "비슷한 신약이 쓰이는 건선, 류머티즘 관절염, 궤양성 대장염 등은 교체투여에 보험 급여가 지원되는 것과 비교하면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신약이 자신에게 맞을지 모르는 환자들이 약값의 90%를 건강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부분 처음에 일단 가장 비싼 약(듀피젠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건보공단 기준 아토피피부염 진료 인원은 2018년 92만487명에서 2022년 97만1,116명으로 5.5% 증가했다. 이 기간 진료비는 823억 원에서 1,765억 원으로 114.4% 늘었다. 지난해 기준 듀피젠트의 연간 처방액은 1,5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중증이나 희소질환 신약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 건강보험 등재 절차나 약값 산정 체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지난달 26일 한국일보가 개최한 '환자를 위한 혁신신약 정책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환자단체와 제약업계는 신약 도입 과정에서 정부가 사회적 요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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