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이면 문재인 정부 때 도입된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1이 시행 4년을 맞게 된다. 이 법을 둘러싸고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분위기에 편승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제도 폐지를 공식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구체적 폐지 로드맵 등을 담은 정부 후속 대책은 깜깜무소식이다.
2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월 셋째 주 기준 0.17% 올라 57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서울·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전주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시장에선 '전세 대란'이란 표현이 나올 만큼 전세가 귀해졌다. 전세 수요가 매매로 갈아타면서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2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0.15%)을 기록했다. 전세 시장 안정화가 시급한 상황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세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박 장관은 최근 "임대차2법은 원상복구가 맞다는 게 제 개인과 국토부의 공식 입장"이라며 폐지론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연초 "다시 (법 개정 이전으로) 되돌아갈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정반대다. 내달 임대차 2법이 시행 4년 차를 맞아 전셋값을 다시 밀어 올리는 기폭제가 될 거란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폐지론을 띄운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후 정부 내 분위기는 조용하다. 장관이 큰 줄기를 얘기하면, 이후 이에 따른 정책 로드맵 등을 발표하는 게 통상적 수순이지만 현재 이런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박 장관 공언과 달리 시장에선 오히려 폐지론에 신중한 모습이다. 당장 임대차 2법을 폐지하면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뛰는 건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보통 아파트 입주가 많이 이뤄지면 저렴한 전세 물량이 쏟아지고, 이 여파로 인근 전셋값도 끌어내린다.
올해 서울의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3만8,000여 가구로 적정 수요(4만8,000가구)에 한참 못 미친다. 내년 입주 예정 물량(2만6,000여 가구)은 더 쪼그라들 걸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엔 입주 아파트 대부분이 재건축 아파트다. 재건축은 70~80%가 기존 거주자인 조합원 몫이고, 이들은 다시 입주하는 비율이 높아 그만큼 전세로 나오는 물량 자체가 적다.
시장에서는 전세 공급이 턱없이 모자란 상황에서 섣불리 임대차 2법이란 안전판까지 없애면 오히려 전셋값이 더 상승 압력을 받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폐지 타이밍이 아니라는 얘기다. 임대차 2법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지만 정부 역시 이런 상황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폐지를 밀어붙이기도 어렵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당장 대안도 없이 폐지론만 띄워 시장 혼선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덕배 금융의 창 대표는 "공급 부족 상황이라 임대 2법 폐지는 되레 전셋값 상승을 키울 수 있다"며 "전세 대란이 매매 수요 촉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