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는 옛 인도의 임신부들에게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미로 문양이 새겨진 음식을 먹으면 아기가 엄마 자궁에서 외부 세계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출생의 여정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책 '미로, 길을 잃는 즐거움'은 미로를 인문사회학적으로 다양하게 바라보는 탐구서다. 영국 남부 도시 윈체스터에서 자라 어린 시절 세인트 캐서린 힐의 잔디 미로에 자주 갔던 저자 헨리 엘리엇은 미로가 인류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미로는 17세기에 만들어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잔디 미로처럼 과거의 유산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1996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베리디타스는 세계 곳곳에 미로를 새로 만든다.
미로는 방향을 잃게 만들려고 설계된 구조물이다. 입장한 사람은 곤경과 불안에 빠지기 쉽다. 평소엔 길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며 사는 요즘 사람들은 왜 미로를 늘리고 또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 미로는 우여곡절로 가득한 삶과 닮았다. 미로를 나올 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더 잘 알게 되듯 길을 잃어 봐야 내가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미로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토대로 책은 독자의 현실과 다리를 놓는다.
책의 편집은 독특하다. 저자가 세계를 돌며 찾아본 다양한 미로를 그린 빨간색 선이 텍스트 한 가운데에, 혹은 텍스트 옆에 똬리를 틀었다. 텍스트도 다양한 방식으로 앉혀 책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읽어야 한다. 책 자체가 '체험형 미로'인 셈이다. 길을 잃는 즐거움을 머리와 함께 몸으로 느껴보길 권하는 편집이 실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