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부고(訃告)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 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여든에 가까워진 작가 김훈(76)의 산문집 ‘허송세월’은 이처럼 죽음이 근경에 자리한 노년의 나날을 담았다. 작가라고 늙음의 풍경이 남들과 다를 리 없다. 노화로 방문한 병원에서는 그를 ‘어르신’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무인 키오스크 앞에서 작동법을 몰라 헤매다 타박을 받는다. “이런 호칭을 들으면 모욕을 느끼지만, 아프니까 별수 없이 병원에 간다.”
나이 듦이라는 보편에서 시작한 글은 찰스 다윈과 정약전, 정약용, 안중근이라는 역사 속 인물과 사진가 강운구가 찍은 사진 속 박경리, 백낙청 등 현대사의 인물, 또한 영유아 살해라는 패륜 사건을 일으킨 언론 속 인물까지 아우른다. 작가는 이들을 호명하며 “이 세계와 인간의 영원한 불완전성을 말하려고 한다”라면서도 “그 불완전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세계와 인간을 대하는 마음에서 겸손과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을 갖출 수 있다”고 덧붙인다.
1974년 기자로 시작해 1994년 소설가로 등단, 생의 절반 이상을 “혀가 빠지게 일했던” ‘시대의 문장가’임에도 글 앞에서의 태도 역시 한없이 겸허하다. “인쇄된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라면서 “책값을 내고 이걸 사서 읽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식은땀이 난다”고 말할 정도다. 그렇기에 ‘은, 는, 이, 가, 을, 에…’ 같은 한국어 조사와 형용사와 부사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는 이의 글은 한 글자도 허투루 읽을 수 없다.
‘허송세월’은 불완전을 살아내는 불완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골몰한 기록이다.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고 말한 작가의 나날이 결코 ‘하는 일 없이 세월만 헛되이 보냄’이라는 의미에 부합할 수 없는 까닭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