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장관에게 전화를 건다.
②곧이어 대통령실 참모들이 국방부·군 수뇌부와 집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③그들의 집중 통화 후 갑자기 '채 상병 사건'의 흐름이 바뀐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 혐의 재판에서 드러난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당사자 간 통신기록을 보면, 이런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대통령→장관 및 대통령실→국방부와 군 수뇌부→유관기관으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보면, 채 상병 사망사건 외압에 대통령실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당시 외압 의혹의 구체적인 '등장인물'과 이들 간의 '연결 고리'가 서서히 드러남에 따라, 수사외압 의혹은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20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등의 통신기록(지난해 7월 28일~8월 9일)을 종합하면, 채 상병 사망사건과 관련된 △사건 기록 경찰 이첩 보류 △사건 기록 회수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착수 전후로 일관된 패턴이 관찰된다. 윤 대통령의 통화 후 대통령실 참모들과 국방부 및 군 고위 간부들의 통화가 확 증가하는 현상이다.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날이 지난해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지시를 어기고 사건 조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긴 날이다. 윤 대통령이 낮 12시 7분쯤 이 전 장관과 4분 정도 통화한 직후 관련자들의 휴대폰 통화 기록은 빈번해진다.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임기훈 전 비서관과 6회 통화 및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과 13분 43초(낮 12시 43분부터), 임 전 비서관과 4분 51초(오후 1시 25분부터) 통화한 뒤 이시원·임기훈 전 비서관 두 사람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접촉한다. 그사이 박 대령은 보직해임됐고, 국방부 검찰단은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박 대령을 입건했다.
두 사람의 연락을 받은 직후 유 관리관은 사건기록 회수와 관련해 경북경찰청 수사부장과 3분 넘게 통화했다. 국방부 검찰단이 오후 7시 20분 사건기록을 회수하는 데 성공하자 이들의 연락은 잠잠해졌다. 이들의 미션이 '경찰로 넘어간 사건을 도로 찾아오는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정황이다. 대통령실이 조직적으로 사건기록 회수에 관여했을 것이란 의심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8월 3일도 심상치 않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오후 2시쯤 박 대령을 압수수색했는데, 공교롭게도 압수수색 전후로 박진희 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은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과 세 차례에 걸쳐 총 7분간 전화를 주고받았고, 이후 임 전 비서관과 통화했다. 유 관리관, 이 전 비서관,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저녁에도 연쇄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박 대령 항명 수사에 대통령실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두고 확인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사건을 재검토하기 전날인 8월 8일의 연락 상황도 비슷하다.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7시 55분 이 전 장관과 통화한 직후, 임 전 비서관은 나흘간 연락을 주고받지 않던 이 전 비서관 및 박 전 보좌관과 각각 통화했다. 박 전 보좌관은 같은 날 오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파견 군인과 10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와 번갈아 통화했다.
'VIP 격노설'의 당일인 지난해 7월 31일도 마찬가지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 내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로 통화한 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조사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임 전 비서관은 이후 박 전 보좌관·이 전 장관 등과 통화했고, 유 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이첩 방법이 있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령 측은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뒤 '격노'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이 전 장관이 이런 지시를 내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해당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 과정에서 이들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기초적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대로 대통령실, 국방부, 군 관계자를 소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