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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3월 29일 중국 시안 청년 6명은 우물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팠다가 인형 같은 도기 조각과 화살 등을 발견한다. 세계 고고학계를 흥분시킨 진시황릉 발굴의 시작이었다. 진시황릉은 점토로 만들어진 병사들로 유명하다. 병사들은 얼굴과 복장이 제각각이다. 8,000개가량 발굴된 점토 병사들 대부분은 깨진 채 발견됐다. 왜 누가 이들 병사들을 박살 냈을까. 다큐멘터리 ‘테라코타 전사들의 수수께끼’는 점토 병사들을 지렛대 삼아 고대 중국의 역사를 들춘다.
진시황릉에 대한 정보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다큐멘터리는 진시황릉에 좀 더 입체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첫 발굴을 주도했던 고고학자를 비롯해 발굴과 관련된 여러 학자들이 안내자 역할을 한다. 역사와 고고학에 별반 관심 없는 이들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화면 속 모습들은 경이롭다. 미국 뉴욕 번화가 맨해튼 크기인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 중이다.
진시황은 죽기 전부터 자신의 묘를 조성했다. 70만 명가량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이 죄수였다. 진시황은 순행 중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최측근이었던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는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자신들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막내아들 호해를 새 황제로 옹립하기 위해서다. 호해는 권좌에 오른 후 이사와 조고의 뜻에 따라 형제들을 척살한다.
진시황릉을 통해 돌아보는 기원전 210년경은 잔혹한 시대였다. 가혹한 군주였던 진시황이 죽은 후에도 폭정의 그림자는 길고 짙었다. 호해가 형제들뿐 아니라 진시황의 후궁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다. 많은 이들이 순장 전통에 따라 점토 병사들처럼 진시황 곁에 묻혀야 했다. 진시황릉 발굴은 잔혹했던 역사의 봉인을 여는 것과 같다.
다큐멘터리는 재현극 형식으로 진시황 사후 이야기를 전한다. 진시황릉 건설 당시 모습, 죄수들로 구성된 제국군과 반란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 등이 화면에 구현된다. 주변 6개국을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진의 전투 방식과 무기들을 볼 수 있다.
점토 병사들은 왜 산산조각으로 발견된 걸까. 다큐멘터리는 반란군 소행으로 추정한다. 진시황릉 건설에 동원돼 노역에 시달렸던 백성이 도굴 안내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점토 병사들은 진시황의 권세를 상징하는 동시에 그가 펼친 폭정을 보여준다. 산산조각 난 점토 병사들은 발굴 후 정교한 복원 과정을 거쳐 전시된다.
다큐멘터리 후반부는 진시황릉 옆에서 최근 발견된 거대한 묘에 초점을 맞춘다. 무덤 주인공이 누구일지 예측하는 내용이 나오나 아직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