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김정은 '상호 원조' 못 박아… 연합 훈련 넘어 자동개입으로 가나[북러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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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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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북한이 19일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협정에 '침략 시 상호 원조'라는 조항을 넣었다. 단순 물류 지원을 넘어서는 조치다.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까지 포함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럴 경우 북러관계는 일약 '동맹'으로 격상된다. 한미동맹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해석과 운용의 여지가 남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동맹이라고 추켜세운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동맹관계는 북한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북러 정상이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만나 "모든 군사·기술 협력을 논의하겠다"던 약속은 불과 9개월 만에 군사적 '동일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두 불량국가의 전례 없는 결속이 한반도와 국제정세를 위협하고 있다.

과거 북러는 동맹수준의 관계를 유지한 적이 있다. 1961년 '조소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을 명시했다. 한러수교 이후인 1996년 이 조약이 폐기됐고, 2000년 소련이 해체한 후 체결한 '북러 우호친선 및 협력조약'에는 안보지원 조항이 빠졌다.

이번 협약 체결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전에 동원될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그래야 북한도 반대급부로 유사시 러시아군의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한미군과 유엔군은 북한이 가장 꺼리는 상대다. 6·25 전쟁 당시 이들의 참전으로 전세가 뒤바뀐 트라우마도 있다. 김 위원장이 이날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소련 시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조기를 맞았다"고 콕 집어 평가한 것은 러시아의 '자동 참전'을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몰아가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러 연합훈련 여부도 주요 변수로 부각됐다. 푸틴 대통령이 회담에서 "러시아는 수십 년간 미국이 강요한 제국주의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강변하자 김 위원장은 "세계의 전략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 러시아의 역할"을 강조하며 맞장구쳤다. '반미 연대'를 기치로 뭉치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다.

이 같은 발언은 향후 연합훈련을 예고한 대목으로 읽힌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한미일 공조로 인해 러시아와 북한 모두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이다. 러시아 해군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에 맞춰 전날부터 동해와 태평양에서 무력시위성 훈련에 나선 상태다. 만약 북러 훈련이 현실화한다면 한미일과 북러 또는 북중러가 동시에 군사력을 투입해 긴장을 조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우리 군 당국은 지난해부터 "북러 연합훈련 실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 같은 군사협력이 러시아의 군사기술 이전으로 연결돼 북한이 강력한 대미 협상카드를 확보할지도 관심사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차별화를 꾀하는 김 위원장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실제 북한은 러시아의 지원으로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전된 기술의 실체에 대해 "정확히 러시아의 최신 엔진 기술"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눈'(위성)을 지원하는 것과 '주먹'(미사일)을 지원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평가한다. 북한은 1998년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꾸준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용 재래무기를 지원하는 북한의 행태에 걸맞은 러시아의 화답은 위성 발사체 정도면 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이 방러 당시 큰 관심을 보였던 핵추진잠수함 관련 기술 역시 전쟁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전략무기인 만큼 러시아가 이전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