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전세사기꾼의 덫 '선순위 가등기'> 기획기사를 첫 보도하고 후속 기사도 여러 번 냈다. 그런 와중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기자에게 사건을 처음 제보해 준 피해자가 1년여 만에 전세사기꾼이 설정한 가등기를 말소해 지금 살고 있는 빌라를 드디어 경매로 낙찰받을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기적 같은 일"이라며 울먹였다. 그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 줄 알기에 기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컸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에. 실제로 취재 초반 적잖이 당황했다. 전세사기 기사를 많이 써 웬만한 유형은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사례는 완전 새로운 데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을 만큼 법적 허점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이중 매매를 막으려고 예비 매수자가 등기에다 일종의 매매 예약을 걸어두는 게 가등기다. 가등기 주택은 신청자(예비 매수자)가 본등기를 하는 순간 소유권 시점이 가등기 시점으로 소급돼 경매받은 이가 소유권을 날릴 수 있기에 경매시장에서 눈길도 주지 않는다.
전세사기꾼들은 무자본 갭투자 과정에서 들인 바지 집주인이 딴마음을 먹고 집 파는 걸 막으려고 가등기제도를 일종의 안전장치로 악용했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로 몰린 지난해부터 경매업계에선 이미 가등기 문제의 심각성이 널리 퍼져 있었다. 피해자 카페에도 비슷한 사례가 줄이었다. 기사화가 안 됐을 뿐이다.
정부 산하 전세사기지원센터, 관할 구청, 심지어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피해자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자에게 절절한 사연을 보냈다. 행여 기사라도 나면 정부가 관련 대책을 내줄 거라 믿었다고 했다. 본보 보도 뒤 정부는 "법무부 중심으로 대책 마련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다.
해결의 실마리는 딴 데 있었다. 정부 대책을 기다리던 피해자는 가등기 때문에 '셀프 낙찰'도 받을 수 없다며 가해자 A씨를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이를 본 A씨 국선 변호인 주선으로 피해자는 A씨의 예비 매수자 역할을 한 B씨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다. B씨는 친구 아버지인 A씨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80억 원의 빚더미에 앉았다고 되레 호소했다. 피해자는 B씨의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내겠다고 설득했고, B씨는 이 말에 마음이 움직여 가등기를 말소해 줬다.
하루 전 메일 한 통이 왔다. 최근에 쓴 <'가등기 덫' 가해자 겨우 찾았지만…> 기사를 본 독자가, 본인도 같은 유형의 피해자라며 기사에 등장한 피해자 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가 어떤 심정인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피해자들이 언제까지 기적에 기대야 하나. 지금이라도 정부가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