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사는 거죠. 여기 사는 사람들 다 그럴 걸요?"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오른 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조금선(68)씨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한 시간 가까이 쪽방촌 인근 새꿈어린이공원을 배회했다. 조씨는 "방 안은 한증막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더워 밖에 나와 있다"며 "10월까진 더울 텐데 벌써 이렇게 더우니 올여름을 어떻게 버틸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때 이른 더위로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은 여인숙이나 여관을 개조해 만든 건물 80여 곳에 900여 명 주민이 살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취약계층 집단거주지. 이곳 쪽방촌은 어른 한두 명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골목이 좁지만 골목마다 더위를 피해 나온 주민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당국도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시는 2022년부터 주요 쪽방촌에 에어컨을 설치해주고 전기료 일부(대당 월 10만 원, 2023년 238대 지원)를 보조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복도에 설치된 에어컨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건물 대부분 1m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1.5평(약 5㎡) 남짓한 방이 10개가량 붙어 있는데, 문을 닫으면 방 안쪽으로까지 냉기가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찾은 한 쪽방은 복도에 에어컨을 틀어놨는데도 방 안 온도가 35도를 넘었다. 그마저도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건물주가 에어컨을 틀지 않는 곳도 허다하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골목에 설치된 쿨링포그(안개처럼 냉각수를 분사하는 장치) 밑에서 땀을 식히던 김모(57)씨는 "방문을 열어놔야 에어컨 바람이 들어와 시원해지는데, 복도에 사람이 계속 지나다니다 보니 혼자 사는 여자라 문을 열어놓기 무섭다"고 말했다.
선풍기로 무더위를 달래기는 역부족이다. 전기 요금 때문에 마음 놓고 틀지 못할뿐더러 좁은 방의 열기 탓에 뜨거운 바람만 나오기 일쑤다.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는 임동수(66)씨는 "3년 전 인근 교회에서 받은 선풍기가 얼마 전 과열돼 고장 나면서 종일 이렇게 집 밖에 나와 있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임씨는 지난주부터는 새벽 시간대에 3시간씩 쪽잠을 자고 있다고 했다.
시가 쪽방촌에 에어컨, 선풍기, 모기장 등이 갖춰진 공용공간인 무더위 쉼터도 만들었으나 주민들의 발길은 뜸했다. 이날 오전 동자동과 돈의동 쪽방촌 내 무더위 쉼터 3곳을 찾아가봤으나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반면 동자동 쪽방촌 옆 새꿈어린이공원의 그늘에서는 주민 5명이 매트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20년째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박경식(57)씨는 "더운 날 사람들 모이면 땀 냄새,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며 "혹시 쉼터에 갔다가 술 취한 사람 만나 시비가 붙을까 봐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적 장애 3급 아내와 함께 사는 김대현(48)씨는 "잠금장치가 부실해 집을 비우면 도둑맞기 십상이라 쉼터에 가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주장욱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에어컨이나 무더위 쉼터 등은 개인 공간을 개방해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더위를 피할 것이냐 사생활을 지킬 것이냐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공주택 사업에 속도를 내 이들의 주거권을 지켜줘야 안전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