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北 뒷길 내준 푸틴… ‘루블화 무역결제’로 대북 제재 무력화 [북러정상회담]

입력
2024.06.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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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기고에 "상호 결제 체계 발전"

24년 만에 방북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루블(러시아 화폐단위) 결제’ 시스템 구축을 통한 대북 제재 무력화 야욕을 드러냈다. 미국의 제재와 감시 대상인 달러화를 대신해 루블화 거래를 확대해 루블화 영향력을 키우고, 북한의 대외 거래 뒷길을 노골적으로 터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18일 방북을 앞두고 북한 노동신문 기고문을 통해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를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과 국제관계를 더욱 민주주의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로 만들기 위해 밀접하게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에 (관련 협의가) 다시 진전된다면 러시아가 북한 내에서 기축통화로서 루블화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북러 제재에 앞장서는 서방 국가들의 달러·유로화 중심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탈피한 북러만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으로 보고 있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러시아학과 교수는 본보 통화에서 “러시아는 북한에 우주과학 기술과 에너지를,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 제공을 확대할 수 있어 경제 교역 잠재력이 큰 상황”이라며 “러시아와 북한 모두 서방을 비롯한 국제사회 금융 제재를 받는 입장인데 북한이 루블 결제를 활용하면 두 나라 간 경제 협력이 증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앞서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20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경제공동위원회를 열고 쌍무교역(상대 생산품을 사주는 동시에 자국 생산품을 파는 무역) 주요 통화로 루블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달러를 선호한 데다 양측의 교역량이 많지 않아 실질적 효과를 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무기거래 등의 교역량이 커진 현재 상황은 10년 전과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어차피 북한은 대북 제재로 인해 외부와 교역을 하거나 돈을 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루블화로 계산할 경우 자신들이 필요한 에너지나 원자재를 사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주도 ‘국제은행간통신협회시스템’(SWIFT)을 대체하려는 러시아금융통신시스템(SPFS·System for Transfer of Financial Messages)에 북한이 공식 가입하거나,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에 결제대금을 루블화와 위안화로 내는 중국 모델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러가 실제 루블화 결제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우리 정부의 대북 압박은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우리가 쓸 수 있는 압박 카드가 줄어드는 셈”이라며 “정부로서는 중국이 북러 간 협력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가 과학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협력까지 선언할 경우, 이를 통한 우회적 경제지원과 국방기술 지원까지 이뤄질 수 있어 우리로서는 북한에 대한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