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김준영(가명)군은 작년까지만 해도 일어나자마자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접속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처음 온라인 도박을 접하게 된 것은 5년 전인 중학교 2학년 때. 김군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한 형이 갑자기 맛있는 것도 자주 사주고 돈 자랑을 해서 물어봤더니 도박으로 벌었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며 "바카라 같은 홀짝 방식의 게임부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매달 용돈 10만 원을 모아서 시작했다가 주변에 온라인 도박 승률이 좋았던 친구에게 돈까지 빌려가며 점점 빠지게 됐다. 결국 수천만 원에 달하는 대출이 생겨 경찰서까지 가는 주변 사례를 보고 도박을 끊게 됐다고 김군은 말했다. 그는 "워낙 접근이 쉽다 보니 어느 반에나 4~5명씩은 도박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청소년 온라인 도박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근절하기 위해 온라인 도박 업체들이 쓰는 계좌를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누구나 손쉽게 개설이 가능한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이 최근 불법 도박 업체의 대포통장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3일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가 온라인 불법 도박 업체에서 사용 중인 입금 계좌 175개를 분석한 결과 카카오뱅크 계좌(45개)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4개가 '7979', '7942'로 시작하는 모임통장이었다. 이어 기업은행(31개), SB저축은행(24개), 농협은행(17개), 국민은행(14개) 순이었다.
모임통장은 카카오톡 친구들과 공용으로 쓸 수 있는 계좌로, 카카오뱅크 입출금 계좌 하나만 있으면 손쉽게 신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시중은행에서는 한 계좌를 만들면 20영업일 내 계좌를 개설할 수 없지만 모임통장은 이 제도에 적용되지 않았다. 비대면으로 짧은 시간에 계좌를 개설했다가 폐쇄할 수 있고 그때마다 신규 계좌번호도 부여받았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불법 도박 업체 입장에선 단속을 피하기 위해 많은 계좌를 확보해야 하는데 누구나 쉽게 여러 개의 계좌를 만들 수 있었던 모임통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카카오뱅크가 모임통장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대포통장 가격도 확 떨어졌다"고 말했다. 도박없는학교는 계좌 관리 감독 소홀을 이유로 카카오뱅크를 금융감독원에 '도박 방조죄'로 신고했다.
사실 조 교장은 2000년대 초반 온라인 도박장을 운영한 업계 원조 격 인물이다. 지금은 불법적인 일에 회의를 느끼고 청소년 도박 중독 근절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온라인 도박 업체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상황은 입금 계좌가 정지당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포계좌가 제한적이다 보니 점점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다.
이에 그는 도박 중독의 늪에서 벗어난 아이들과 함께 불법 도박 업체에 직접 자금을 입금하면서 대포통장을 확인해 일일이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그렇게 폐쇄한 계좌만 지난해 280개가 넘었다. 조 교장은 "최소 금액이 3만 원이라 3만 원을 입금하면 돈을 입금받는 '앞방', 중간에 자금 세탁 목적으로 거치는 '중간방', 인출 계좌인 '뒷방'까지 통장 3개를 묶을 수 있었다"며 "5억 원짜리 계좌를 날리는 효과"라고 말했다.
신고하는 데 쓴 비용만 1,000만 원이 훌쩍 넘다 보니 이제는 전략을 바꿨다. 불법 도박 업체가 사용하는 계좌의 계좌번호와 계좌주, 은행 등 정보를 도박없는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식이다. 금융기관 스스로 계좌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하라는 뜻을 담았다. 조 교장은 "도박 의심 계좌에 대한 조치는 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동안 은행들이 눈을 감으면서 도박 시장을 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이 도박, 사기, 불법 사채 등에서 대포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금감원도 무분별한 모임통장 개설을 제한하도록 지시한 상태다. 이에 대해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모임통장의 개설 주기를 한 달로 제한하도록 약관을 변경해 악용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며 "앞으로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불법도박 이용 계좌 제보 채널을 마련하는 등 불법 도박 피해 방지에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