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동물원서 7년 만에 탈출한 백사자들...처음 밟아보는 잔디에 놀란 듯

입력
2024.06.18 20:00
지난해 운영 중단 후 방치 '동물 학대'
2.5평에 갇혀 살다 150평 방사장 이사
"눈 밑 종양 치료 후 건강 상태 확인 중"

8㎡(2.5평) 규모의 지하 방사장에 7년간 있었던 백사자 한 쌍이 실외 방사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야외로 처음 나온 백사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대구 수성구 소재 A 동물원에 방치됐던 암수 백사자 한 쌍은 17일 달성군 스파밸리 네이처파크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사자들은 잔디가 깔려 있는 486㎡(150평) 규모의 실외 방사장에서 머물게 됐다.

여덟 살로 추정되는 이 사자들은 한 살 때부터 A 동물원의 유리로 된 지하 사육장에서 살았다. 햇볕 대신 실내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이 관람 시간 내내 흘러나오는 환경에서 생활했다. 사자들은 이름도 없이 홍보를 위해 '영남권 최초 백사자'로 불렸다.

17일 새 보금자리로 옮긴 사자들은 잔디를 밟으며 놀란 듯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호기심이 발동해 두리번거리며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취가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비틀거리면서도 실외 방사장을 돌며 탐색했다.

네이처파크 동물원 측은 "수사자 눈 밑에 종양이 있고 발뒤꿈치가 까져 있어 우선 치료했다. 현재 두 마리 모두 건강 상태를 확인 중"이라며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육사들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빠른 적응을 위해 사자들이 내실과 외부 방사장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했다.


그간 사자를 포함해 300여 마리 동물을 사육해온 A 동물원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난 등을 이유로 지난해 5월 문을 닫았다. 이후 동물들은 1년 넘게 방치됐고 배설물과 사체가 처리되지 않아 동물학대 논란이 일었다. 최근 대구시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휴원 신고를 하지 않은 해당 동물원에 대해 과태료 300만 원 처분을 내렸다.

네이처파크 동물원은 지난달 대구시와 협의해 A 동물원의 76종 동물 324마리를 데려오기로 했다. 매각 절차를 통해 모든 동물을 1억3,100만 원에 낙찰받았고 이달 말 모든 이송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A 동물원에는 흰꼬리원숭이 등 17마리와 거북이 등 파충류 14마리가 남아있다. 네이처파크 동물원 측은 원숭이가 생활할 방사장에 대한 환경 당국의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며 조만간 모든 개체를 이동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파충류는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임시 보호했다가 적절한 기관을 찾아 보낼 예정이다.



장수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