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는 맞바꿀 사안 아니다

입력
2024.06.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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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추진하던 상법 개정 움직임이 엉뚱하게 흐르고 있다. 개정의 핵심은 상법에 있는 ‘이사 충실 의무’ 조항의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영진이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 재계는 경영진이 처벌 우려로 경영 결정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반발한다. 그러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의 보완책으로 ‘배임죄 폐지’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더 복잡하게 꼬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은 지분으로 사주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주가 승계나 지배력을 강화하려면 주가가 낮은 것이 유리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번 상법 개정은 이런 사주와 다수 주주 사이 이해 상충 문제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다. 문제는 ‘주주 이익’이라는 개념이 모호해, 경영 결정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이 남발될 우려다. 특히 국내에서는 상법 위반에도 배임죄 적용이 가능해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배임죄 자체가 적용 범위가 넓고 모호해 경영진이 새로운 투자나 과감한 경영 결정을 꺼리게 만들고 결국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배임죄가 존속되는 가장 큰 이유가 국내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사주의 전횡 등을 제어할 수 있는 법 장치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에서 헌법재판소도 2015년 전원일치로 배임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는 밀접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흥정하듯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주주 충실의무를 상법에 담았는데,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할 법이 마땅치 않다면 애초에 손대지 않느니만 못하다. 다수 주주의 이익을 지키고 증시 육성에 필요한 조치는 상법 개정에 담고, 배임죄는 적용 요건을 명확히 해 무리한 처벌을 막는 방향으로 주무 부처가 각각 추진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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