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참이슬에 사이다 섞어 '벌컥'...베트남 맥주거리 적시는 소주

입력
2024.06.19 10:15
18면
하노이 '따히엔 맥주거리' 가보니
베트남 현지에 녹아드는 소주
하이트진로 연평균 31% 성장
첫 해외 공장 건축, 글로벌 공략


13일 오후 6시 베트남 수도 하노이시의 명소 '따히엔 맥주거리'에 삼삼오오 모인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인이 즐기는 주류는 거리 이름처럼 맥주가 다가 아니었다. 한국식 고깃집을 앞세운 '진로 BBQ' 1층 13개 테이블 중 손님으로 찬 11개 자리마다 지글지글 익는 고기판 옆에 참이슬이 놓여 있었다.

소주를 삼겹살과 함께 먹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한국의 여느 식당과 똑 닮았다. 병째 쥔 참이슬을 재빠르게 돌려 회오리를 일으킨 후 뚜껑을 열고 일행에게 한 잔씩 따라준 한 베트남 남성에게선 내공까지 느껴졌다.

손님 대부분이었던 20, 30대 베트남 청년은 참이슬후레쉬 같은 기본 소주보다 달달한 과일소주인 '청포도에이슬', '복숭아에이슬' 등을 골랐다. 술을 잔뜩 담을 수 있는 디스펜서에 참이슬후레쉬 두 병, 스프라이트 한 캔, 얼음을 콸콸 넣고 젓가락으로 저어 마시는 테이블도 눈에 띄었다. 소주를 다소 쓴 맛으로 즐기거나 맥주와 섞는 한국식 주류 문화와 비교해 도수를 낮춰 가볍게 즐기는 '베트남식'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베트남 여성 레티튀항(22)은 "소주를 마트 시음 행사 때 접한 후 이런 BBQ 집을 올 때마다 찾는다"며 "나들이 갈 때도 종종 챙겨 요구르트를 타서 마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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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청년 잡은 진로 과일소주



참이슬, 진로이즈백 등 하이트진로 소주 제품을 취급하면서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진로 BBQ의 김광욱 대표는 "많게는 하루 200명 정도 손님을 받는데 보통 4인 기준 소주 두 병을 주문한다"며 "손님 80%는 20대 여성으로 과일소주 판매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인기인 '야장'(야외 장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맥주거리 속 다른 가게를 살펴보자 소주가 놓인 테이블이 간간이 보였다. 베트남 음식 식당에 친구 두 명과 방문한 20대 베트남 여성은 소주을 맛본 지 3년이 됐다면서 "소주는 한국 식당에 가면 거의 빠뜨리지 않고 주문하고 이렇게 베트남 음식과 함께 마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소주가 국내 소비자 또는 해외 교민 판매용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외국에서 활동 무대를 빠르게 넓히고 있는 모습은 같은 날 들른 현지 중대형 슈퍼마켓 후지마트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가로 80cm, 세로 180cm 크기의 진열대가 8개씩 양 옆으로 나열된 주류 코너 중 소주는 한 칸을 차지했다. 맥주, 와인이 각각 네 칸, 세 칸씩 진열된 점을 감안하면 베트남 주류 시장에서 소주의 위상이 상당히 올라온 셈이다.

주류 코너 중 진열대가 맨 끝에서 만나 소비자 눈에 가장 잘 띄는 '엔드 매대'에선 하이트진로 소주만 배치한 특판(특별 판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한 병에 3,000원 정도인 소주는 한국 가격, 현지 물가를 고려할 때 다소 비싼 수준이지만 이 지점에서만 한 달 300병 정도 팔린다. 조성균 하이트진로 베트남 법인장은 "대형마트, 편의점이 매년 증가하는 베트남에서 신규 점포가 문을 열 때 진로 소주를 가장 좋은 자리에 놓도록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에 그쳤던 소주, 해외 돌파



베트남 2030세대 사이에서 최근 유행 중인 '게스트로바'에서 소주를 즐기는 모습도 종종 포착된다고 조 법인장은 귀띔했다. 게스트로바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춤을 추면서 술을 마시는 곳이다. 소주를 얼음을 채운 컵에 넣어 양주처럼 즐기거나 맥주 마시듯 병째 들이켠다고 한다.

이처럼 소주는 베트남에서 잘나가는 K푸드의 한 축으로 현지 젊은 층에게 서서히 녹아들고 있다. 실제 하이트진로가 베트남에서 판매한 소주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31%씩 성장했다. 하이트진로는 2016년 법인 설립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2017~2023년 기준 하이트진로 소주 판매는 연평균 12.6% 증가했다. 하이트진로가 베트남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2016년 내건 '소주의 세계화'가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는 셈이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하이트진로는 새 슬로건으로 '진로의 대중화'를 제시했다. 소주를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주류로 꼽히는 맥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더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베트남 타이빈성에 첫 해외 공장을 짓고 2026년 가동할 계획이다. 베트남 공장은 우선 소주에 익숙한 동남아시아 국가 내 점유율을 높이는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황정호 하이트진로 해외사업본부 전무는 "국가대표 소주의 사명감을 갖고 진로의 대중화를 통해 앞으로의 100년을 설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노이=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