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재판부, 초유의 '1.3조 판결문 수정'... 다시 판 흔들린 세기의 이혼

입력
2024.06.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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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재판부 계산, 치명적 결함" 주장
재판부, 주식가액 수정... 1.3조는 그대로
노소영 측 "침소봉대... 결론엔 지장 없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17일 판결문을 수정(경정)했다. 경정은 판결문에 단순 오기 등 표현상 오류가 있을 때, 재판부가 당사자 신청에 따르거나 직권으로 고치는 것을 뜻한다. 최 회장 측은 바뀐 부분이 1조3,808억 원 재산분할 전제에 해당하는 '치명적 결함'이라고 주장하며, 대법원에서 다투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판결문 수정으로 인해 '세기의 재산분할'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 김시철)는 이날 최 회장과 노 관장 양측에 일부 숫자 수정을 포함한 판결경정 결정을 송달했다. 판결문에 표기된 주식가액 '100원'을 '1,000원'으로, 상승분 '355배'를 '35.6배'로 고친 것이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선고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분할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에 재판부는 판결문 문구를 바꾸면서도 위자료와 재산분할 액수는 바꾸지 않았다. 결론 등 판결의 본질적인 내용까지 변경할 필요 없다고 보아, 단순히 잘못을 바로잡는 경정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고친 오류는 앞서 최 회장 측이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치명적 결함'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최 회장 측은 1994년부터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까지, 그 이후부터 2009년 SK C&C 상장까지의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며 "항소심 재판부 판결에서 재판의 전제에 해당하는 부분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1994년 11월 대한텔레콤(SK㈜의 모태기업) 주식 70만 주를 주당 400원에 매수했다. 1998년 SK C&C로 사명을 바꾼 뒤 대한텔레콤 주식 가격은 이후 두 차례(2007·2009년) 액면분할을 거쳤다. 당초 재판부는 ①1994년 11월 최 회장이 취득할 당시 대한텔레콤 가치를 주당 8원 ②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는 주당 100원 ③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 주당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해, 주식이 355배 상승했다고 썼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은 ②번 부분에서 '치명적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두 차례 액면분할을 고려할 때 당시 가액은 주당 100원이 아닌 1,000원이었으며, 재판부 계산에 오류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는 취지다. 수치의 오류를 다시 바로잡으면 최 선대회장 기여분은 12.5배에서 125배(8원→1,000원)로 늘고, 최 회장 기여분은 355배에서 35.6배(1,000원→3만5,650원)로 줄게 된다. 재판부가 기업 성장에서 최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기여분을 토대로 재산분할액을 산정했다면, 전제가 되는 숫자가 틀렸으니 결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SK 측 입장이다. 최 회장 기여분이 줄었으니, 배우자인 노 관장의 재산분할액도 감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 회장 측은 이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대법원에 상고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최 회장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 이동근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부는 잘못된 결과지에 근거해 최 회장을 사실상 기업을 창업한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단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경정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추후 대법원에서 이 부분에 대해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 측은 "계산 오류가 재산분할 범위와 비율 판단 근거가 된 만큼, 단순히 판결문을 바꾸는 차원에서 끝날 일은 아니다"라며 "이의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 회장 측의 '판결 오류' 주장에 대해 노 관장 측은 "일부를 침소봉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여전히 SK C&C 주식 가치가 막대한 상승을 이룩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결론에 지장은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가 계산 실수를 인정하면서, 향후 대법원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대법원은 이 계산 실수가 전체 재산분할 액수에까지 영향을 줬는지 여부를 우선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근아 기자
최다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