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휴진 첫날, 환자도 울고 교수도 울었다… "히포크라테스의 통곡"

입력
2024.06.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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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무기한 휴진 시작일 오전 상황]
교수·전임의·전공의·의대생 모여 피켓시위
아직까지 큰 혼란 없지만 환자들 불안감

17일 오전 8시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이른 시간이라 진료 접수 창구가 열리지 않은 곳이 꽤 있었지만, 혹시나 접수하지 못할까 근심 어린 표정의 환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의대교수들이 휴진을 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불안한 이들은 환자와 그 보호자. 이들은 텅 빈 접수 창구에 직원들이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내장 치료를 위해 안과를 찾았다는 백모(72)씨는 "불안정한 시기에 요즘 말로 병원에서도 오픈런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접수는 할 수 있다고 미리 이야기를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병원 복도 곳곳에는 교수진의 휴진 방침을 비판하는 빨간색 배경의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었다.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의 대자보에는 '의사제국 총독부의 불법파업 규탄한다. 휴진으로 고통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라며 일제 조선총독부에 빗대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문구도 있었다. 대자보를 지켜보던 한 환자는 "환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사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문구"라고 일갈했다.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의대 앞에서는 서울대병원 비대위 소속 교수 80여 명이 '현장의견 무시하는 불통정책 철회하라' '필수의료 중증진료 기피원인 외면 말라' '사직금지 자유박탈 전공의가 노예인가' 등의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당장 철회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진료 후 초록색 가운을 입고 급히 현장을 찾은 의사들을 비롯해 병원을 떠난 전임의, 전공의, 의대생들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집회에 동참했다. 곽재근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자신이 진료한 아이와 부모를 향한 편지를 읽어 내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진을 향한 악화한 여론 탓인지, 보안 업체 관계자들은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나온 기자들을 통제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곳곳에도 집단 휴진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각지 서울대병원 교수진은 이날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다. 서울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 교수들의 휴진 참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교수 967명 중 529명(54.7%)이 외래 휴진이나 축소, 수술 연기 등에 동참할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대란이 우려됐지만 이날 오전까지 현장에서 큰 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예정된 진료가 진행되는 경우가 다수였던 데다, 사전에 일정을 통보받은 환자들도 병원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한 직원은 "평소와 비슷한 분위기"라며 "진료 규모가 축소됐을지 모르지만, 아예 휴진을 하지 않는 의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18일부터 의사협회 차원의 전체 휴업이 예고돼 있는 만큼, 환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혈액종양이 있는 6세 딸아이를 데리고 종로구 서울대병원을 찾은 박모(40)씨는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받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데 불안감이 말할 수 없이 크다"며 "교수님들이 전향적으로 생각해 하루빨리 의료 정상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정부는 진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이날부터 전국 단위 중증응급질환별 순환당직제를 실시하고, 대학병원장들에게는 집단 휴직으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라고 요청했다.

김재현 기자
전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