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코로나19 사태 당시 비밀리에 중국산 백신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하는 작전을 벌였다는 언론 보도를 인정했다. "백신을 활용해 개도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는 게 미국의 해명이지만, 개도국 보건 상황은 무시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17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전날 미국이 중국의 시노백 백신 품질에 대한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는 작전을 수행했다는 보도에 대해 "국방부는 미국과 동맹국 등을 겨냥한 중국의 악의적인 영향력 확대 캠페인에 대응해 왔다"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정보 공간에서 작전을 수행해왔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또 "중국은 코로나19 확산 당시 미국을 비난하는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면서 "미국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에 대한 억제력을 계속해서 구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확산 당시인 2021년 중국은 자국이 개발한 백신 시노백을 필리핀 등 개도국에 무상 제공했다. 당시 개도국 다수는 선진국들이 일찌감치 서방권 백신 물량을 선점한 탓에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때 중국의 백신 공여에 대한 방해 공작이 있었음을 미 국방부가 시인한 셈이다. 내부자 증언을 인용한 구체적 보도가 나오자 차마 부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14일 미 정부의 전직 관계자들을 인용한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차이나앙바이러스('중국은 바이러스'란 뜻의 타갈로그어 표현)란 태그가 달린 최소 300여 개의 엑스(X·당시 트위터) 계정을 통해 중국산 백신 품질을 깎아내리는 정보를 확산시켰다. 필리핀에는 "코로나19도 중국에서 왔고, 백신도 중국에서 왔다. 중국산 백신은 효과가 없다"는 내용을 확산시켰고, 무슬림 국가에는 "중국산 백신 제조에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이 활용됐기 때문에 이를 접종하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해괴한 주장도 은밀히 퍼뜨렸다.
미군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에 "우리는 이 사안을 공공보건 관점에서 보지 않고 중국을 어떻게 진흙탕에 끌어들일 것인가의 관점에서 봤다"고 전했다. 당시 이 비밀 작전에 직접 관여한 미군 고위당국자는 "우리는 협력국과 백신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면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중국 백신을 비방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코로나19 사태 당시 백신 물량을 싹쓸이하고 개도국 상황은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에 중국이 무상 백신 제공에 나서자, 개도국 그룹에서 친(親)중국 여론이 커질 것을 우려, 중국산 백신 험담 작전을 벌인 것이다.
다트머스 가이젤 의과대학의 전염병 전문가 대니얼 루시 교수는 "미국 정부가 그런 행동을 했다니 실망스럽고, 환멸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시노백 측도 17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미국은 백신에 낙인을 찍어 접종률 저하, 사회적 공황과 불안, 과학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시노백 측은 "미군의 이런 작전을 보도한 미 언론을 높게 평가한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