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 극히 선동적이고 궤변스러운 건 널리 알려진 바다. 하지만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이라고까지 한 이번 극언은 궤도를 이탈한 그의 행태가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될 지경에 이르렀음을 차갑게 일깨운다. 나라 꼴을 생각해서라도 이젠 그 말의 옳고 그름을 엄정히 짚어야 할 때가 됐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기자들에게 “동일한 사건에 대해 동일한 법원의 다른 재판부가 전혀 다른 판단을 해서 상반된 결론이 났다”며 ”왜 이런 점에 대해 우리 언론들은 한 번도 지적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했다. 그가 말한 ‘동일 사건’은 쌍방울그룹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이고, ‘다른 판단’이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1심 판결과 최근 자신의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1심 판결의 사건 판단이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안 회장 재판부가 지난해 5월 “대북 송금은 쌍방울그룹 주가 부양을 위한 대북사업의 대가라고 판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전 부지사 재판부는 “(대북 송금이) 이재명과 경기도를 위한 송금”이라고 배치된 판결을 했으니 문제라는 얘기다.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중형 판결이 자신에 대한 추가 기소로 이어진 만큼 다급해진 사정은 이해된다. 하지만 ‘들쭉날쭉 판결’ 주장은 기만에 가깝다.
SBS 등의 확인에 따르면 안 회장 판결의 주가 관련 대목은 재판부가 검찰 공소내용을 사실상 인용한 범죄사실에만 등장한다. 오히려 당시 재판부는 2018년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이 북측 인사에게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 50억 원을 “대신 내주겠다”고 말한 게 인정된다고 적시해 경기도 관련성을 짚었다. 이 대표는 당시 재판부가 주가 관련 범죄사실을 인정한 것을 마치 경기도와 자신의 대북송금 관련성을 적극적으로 배제했다는 듯 주장하고, 나아가 재판부가 대북 송금의 경기도 관련성을 인정한 대목은 쏙 뺀 채 사실을 교묘히 호도한 셈이다.
국민은 대북 송금 사건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대표는 아우성을 침으로써 여론을 크게 흔들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론까지 그의 입맛대로 휘둘릴 순 없는 것이다. 이 대표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벗어난 잘못된 태도 때문에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진실은 바닷속에 가라앉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기자로서 정작 언론의 태도를 반성하게 되는 건 되레 국민을 오도하는 정치인의 교언과 선동에 좀 더 치열하게 시비하지 못했을 때다. 지난 12일 유튜브로 유포된 이 대표 발언이 그렇다.
이 대표는 자료를 책상에 내치며 분노로 말을 잇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자영업자 연체율이 급증하고 폐업자 수가 곧 1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며 격앙됐다. 그리곤 정부가 아프리카에 14조 원 펑펑 쓰고, 확실하지도 않은 유전에 1조 원씩 퍼부으면서 죽을 지경인 자영업자 지원할 돈은 없다는 거냐며 통탄스러워했다.
이재명다운 ‘사이다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매년 창업 자영업자가 100만 명 이상이고, 폐업자 수치는 통상 창업자의 70~80%라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았다. 2018년에도 폐업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 자영업 사정이 매우 어렵지만 폐업자 수만 갖고 큰일 났다며 대뜸 대출 연장이니 뭐니 말이 쉬운 얘기를 입에 올릴 일은 아니었다. 또 아프리카 지원금과 자영업자 지원 예산을 묶은 얘기도 어불성설에 가까운 말의 트릭에 불과하다.
그걸 언론은 또 비판 없이 지나쳤다. 그렇게 어물쩍하다 보니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궤변과 선동이 판을 치게 됐다. 언론이 ‘애완견’ 소리 듣지 않으려면 이 대표 주장부터 더욱 가차 없는 사실 확인과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칼럼 중 SBS 보도 인용 부분은 '재판부가 검찰 측 범죄사실을 판결문에 인용한 것 역시 관련 사실을 인정하는 재판부의 판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을 합당하게 수정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