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능선 넘은 사도광산 등재... "한국 정부가 일본 강하게 압박해야"

입력
2024.06.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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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코모스 보류 의견 맞춰 기타자와 제외
"장애물 일부 해소… 한국 입장 더 중요해져
저자세 아닌 군함도 재발방지책 약속 받아야"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로부터 '등재 보류' 권고의 이유로 지적받은 사항을 일부 해소하면서 사도광산이 한 달 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커졌다. 관건은 한국 정부의 반대 여부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2015년 나가사키현 하시마(군함도) 등을 등재하며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서술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코모스의 보류·추가 권고 중 보류 사유는 해소

16일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코모스 보고서를 보면 이코모스의 사도광산 심의 결과는 '등재 보류 권고'와 '추가 권고' 사항으로 나뉜다.

이코모스는 등재 관련 권고 사항 4단계(등재 권고·보류·반려·등재 불가) 중 두 번째인 '보류(refer)'를 권고하며 '에도시대보다 후시대 물증이 많은 일부 지역을 제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코모스가 지적한 곳은 사도광산을 상징하는 근대 시설인 부유선(浮游選) 광장(鑛場)이 있는 기타자와 지구다. 일본 정부는 결국 등재 대상에서 기타자와 지구를 제외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은 "등재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해결됐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코모스는 '광산 채굴의 모든 기간에 걸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해설 전시 전략을 개발해 현장에 설치하라'는 추가 권고도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장소였다는 내용을 서술해야 한다는 한국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이코모스가 등재 보류를 권고한 직접적 사유는 아니다. 따라서 일본 측이 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채 등재를 시도할 수 있다.

열쇠는 한국 정부가 쥐고 있다. 등재 결정은 보통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되는데, 반대국이 있으면 표 대결로 간다. 상대국인 한국이 끝까지 반대해 표결로 가면 다음 달 회의에서 표결을 하고, 위원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한국과 성실하게 논의하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투표 상황 피하겠다"는 한국 정부… "저자세 우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반대할 것"이라면서도 "투표까지 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 합의를 이루려는 것이 양국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또 일본 집권 자민당 의원들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에게 면담을 요청해 만날 약속을 잡았다가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주일 대사관은 취소 이유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강창일 전 주일 한국대사는 "한국 정부가 저자세로 대응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며 "나중에 반일 감정이 다시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가 강하게 압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일본이 2015년 군함도 등을 '메이지시대 근대산업유산'으로 등재하며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해 서술하겠다고 약속한 후 지금까지도 지키지 않은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20년 일본 총무성이 도쿄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극우 인사가 센터장을 맡아 '군함도에서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는 등 약속과 정반대 주장만 해 왔다. 세계유산위원회가 2021년 일본 정부에 개선을 촉구했지만 변화는 없다.

일본은 이번에도 또다시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정도로 한국 정부의 타협을 이끌어낸 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일본이 (군함도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점을 계속 알려야 한다"며 "사도광산 역사 서술에는 한국 정부가 직접 참여하게 하는 등 일본으로부터 재발 방지책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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