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북송금 기소는 희대의 조작 사건"이라며 "(안부수 판결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은)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를 받아 열심히 왜곡·조작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대표가 한국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으로 규정하며 그 근거로 삼았던 '안부수 판결'은 과연 무엇일까. 이 대표 말대로, 수원지법의 두 재판부(안부수 재판부, 이화영 재판부)는 같은 사건을 두고 완전히 모순된 판단을 했던 걸까.
이 대표 말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일보는 16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판결문(지난해 5월 수원지법 형사15부)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판결문(이달 7일 수원지법 형사 11부)을 비교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대표 주장과 달리, 안부수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한 게 아니라 '쌍방울 대북송금의 동기'를 아예 판단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송금 사건은 구조가 다소 복잡해 먼저 알고 들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은 크게 두 갈래다. ①2019년 북한의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 ②이 대표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 등 경기도가 줬어야 할 800만 달러를 쌍방울그룹이 북한 조선노동당에 대신 내줬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이화영 전 부지사는 '800만 달러 대납을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공모하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7일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안부수-이화영 재판에서 겹치는 부분은 2019년 1월 스마트팜 사업 관련 대북 송금이다. 안 회장은 당시 스마트팜 사업과 관련해 김성태 전 회장 등과 공모해 14만5,040달러와 180만 위안을 송명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위) 부실장에게 전달한 것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안 회장 재판부는 그가 북측에 돈을 건넨 이유를 '쌍방울 주가부양 때문'이라고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검찰은 "안 회장이 북한과 대북사업에 우선적 참여 기회를 받는 이권뿐만 아니라 계열사 주가 상승을 노리던 김 전 회장 등과 함께 대북사업을 추진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범행 동기에 해당하는 '주가 상승' 부분을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2018년 12월 김 전 회장과 공모해 7만 달러를 김영철 아태평위 위원장에게 지급한 안 회장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대북중개업자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북한 관련 사업에 관해 협조를 구하는 것에 대한 대가"라고 설명하는 데 그쳤다.
결국 당시 안 회장 재판부는 △800만 달러 성격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쌍방울이 스마트팜 사업비 전체를 대납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며 △스마트팜 비용 대납과 관련해 안 회장이 일부 관여한 것을 '사익 추구'로만 판단한 것이다.
반면 이번에 이화영 재판부는 안 회장이 준 돈을 포함한 '800만 달러가 쌍방울의 경기도 스마트팜 비용 대납과 이 대표 방북비용 명목으로 북한 측에 전달됐다'고 판단했다. 이화영 재판부가 안부수 재판부보다 한발 더 나아가 판단한 것일 뿐, 두 재판부 판단에 모순이 있었던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가 판결문에 '인정사실'을 따로 적어뒀고, 그 속에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사실' 내용이 없다면, 검찰 판단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게 아니라 판단을 보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안 회장과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은 양립 가능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안 회장과 이 전 부지사의 판결에는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대목이 나온다. 두 재판부 모두 △2019년 1월 안 회장이 마련한 돈이 송명철에게 전달됐고 △그 전에 안 회장이 이 전 부지사·쌍방울그룹 등과 북측의 가교 역할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수원지검은 "안 회장을 2022년 11월 기소할 당시 스마트팜 비용 대납경위 등 경기도 관련성을 기재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며 "김 전 회장이 지난해 1월 체포되기 전이라 대북송금 경위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안 회장 항소심 재판에서 이 전 부지사와 경기도의 대북송금 관련성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도 이를 허가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