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가해자 신상 공개 왜 열광하나

입력
2024.06.17 04:30
27면

경남 밀양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2004년, 대중은 분노했다. 청소년 가해자 44명의 범행도 끔찍했지만, 피해자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수사기관과 가해자에 엄벌 대신 면죄부를 안긴 사법기관의 행태는 분노를 넘은 좌절을 가져왔다. 정의는 실종됐다. 대중은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고 부실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도 열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충분한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공적으로 단죄되지 않은 죗값은 20년 후 사적으로 청구됐다. 숨죽였던 공분은 폭발했다. 유튜버들의 가해자 신상 정보 공개가 기폭제가 됐다. 성인이 된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삶에 대중은 다시 들끓었다. 가해자들은 생계를 잃고, 가족과 지인도 여론 재판을 받았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관과 판사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사적 응징에 대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회복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통쾌한 보복에 심취한 공분은 피해자의 고통 호소마저 집어삼켰다. 가해자로 잘못 지목된 무고한 이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사적 응징에 대해 뒤늦게 공적 제재가 시작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심의에 착수했다. 경찰은 유튜버들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기로 했다. 법이 허용하지 않은 도 넘은 신상 털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적 응징이 가해자를 되레 피해자로 만들 판이다. 유튜버를 처벌하면 가해자는 공적으로 '명예를 훼손당한 억울한 성범죄자’가 된다.

밀양 사건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수사도 판결도 다시 할 수 없다. 20년 전 경찰은 가해자 신상이 온라인에 퍼지자 이를 계기로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강화했다. 법원은 가해자들의 진학이나 취업을 고려해 형사처벌 대신 소년보호처분을 내렸다. 가해자를 보호하는 공권력의 역설이다.

법과 제도가 가해자를 보호하는 동안 피해자는 어땠나. 사건 당시 고작 열세 살이었던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지난 20년간 몸 하나 누울 곳, 마음 한쪽 쉴 곳 없었다. 의지할 부모는 없었고, 사회는 차가웠다. 여러 차례 전학 끝에 학업은 중단됐다. 홀로 설 기회조차 없었다. 피해자는 시간제 일자리와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가고 있다.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한 피해자에게 사적 지원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피해자 지원을 위해 13일 시작한 모금은 사흘 만에 2,400여 명이 참여해 약 9,000만 원이 모였다.

밀양 성폭행 사건에 대한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해자의 범행과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대가는 누가 치렀나. 법과 제도는 왜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는지, 부실 수사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불합리한 판결이 피해자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피해자의 남은 삶이 방기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밀양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한공주’에서 선처 탄원서를 받아내려 온 가해자들의 부모를 피해 도망가는 피해자는 경찰서장에게 묻는다. "제가 사과를 받는데, 왜 제가 도망을 가야 하나요." 아직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20년 만에 입을 연 피해자는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제게 상처만 주고 금방 꺼지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강지원 이슈365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