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어머니’ 이탈리아 총리 반대로 G7 공동성명에서 '임신중지권' 빠졌다

입력
2024.06.15 14:49
G7 공동성명 초안서 임신중지권 빠져
"모든 나라 찬성했지만 멜로니가 반대"
마크롱 "프랑스에는 성평등 비전 있어"
vs 멜로니 "G7에서 선거운동 말아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임신중지(낙태)권을 포함할지를 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상이 팽팽한 갈등을 빚었다고 1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로이터·AFP통신은 G7 정상회의가 이틀째로 접어든 이날 입수한 공동성명 초안에 임신중지권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작년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임신중지권에 대한 지지가 명시됐다. 지난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와 그 후 치료에 대한 접근을 다루는 것을 포함해 모두를 위한 포괄적인 '성과 생식 건강권'을 달성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올해 공동성명 초안에서는 문구가 일부 바뀌었다. 이번 초안엔 "우리는 포괄적인 '성과 생식 건강권'과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를 포함해 여성을 위한 적절하고 저렴하며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규정한 히로시마 공동성명의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대신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명시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관한 접근성" 문구가 빠진 것이다.

G7 정상회의에 참여한 각국 외교관들은 이 문구가 빠진 이유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지목했다. "다른 모든 국가는 지지했지만, 멜로니 총리에게는 레드라인(금지선)이었기 때문에 최종 문안에서 빠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탈리아의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을 이끄는 멜로니 총리는 자칭 '기독교의 어머니'로 임신중지에 반대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전날 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임신중지권이 포함되지 않은 성명은 서명하지 않겠다며 멜로니 총리를 압박했고, 프랑스·독일·캐나다 정상들도 임신중지권 명시를 지지했다. 그러나 성명 초안에 임신중지권을 담는 데에는 실패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G7 정상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대화하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월 프랑스 의회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언급하며 이탈리아 기자에게 "당신의 나라에는 우리 같은 감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만,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공유하는 비전은 아니다"라고 멜로니 총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멜로니 총리도 마크롱 대통령을 저격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G7 정상회의와 같은 소중한 자리를 이용해 선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심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 후 조기 총선을 선언했는데, 그가 총선을 의식해 임신중지권 명시를 밀어붙였다며 비꼰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은 두 사람의 싸늘한 기류가 전날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주최한 G7 정상 환영 만찬에서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이 멜로니 총리의 손에 입맞추며 인사하자 멜로니 총리는 불쾌감에 움츠러드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지도자는 멜로니 총리가 2022년 10월 집권한 이후 이주민 문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첫 유럽 순방 당시 멜로니 총리 '패싱' 사건까지 다양한 일로 충돌해 왔다.

올해 G7 정상회의는 이탈리아 풀리아주 브린디시의 보르고 에냐치아 리조트에서 13일부터 열리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다음 날(15일) 회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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