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면 교전을 멈추고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불참하는 가운데 15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외무부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협상 조건들을 열거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먼저 러시아가 '새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동남부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면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이 지역들은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약 18% 정도에 해당한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가 공식적으로 나토 가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할 것, 중립 지위와 비핵화를 선언할 것, 마지막으로 서방이 가하고 있는 모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것 등도 협상 조건으로 걸었다. 그는 이런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내일이라도 기꺼이 우크라이나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대신 현재 현실에 기초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진정한 국익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고려할 필요도 없는 조건이라고 일축했다. 올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푸틴 대통령의 언급한 조건들을 놓고 "협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종전 조건으로 자국 영토에서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동결된 러시아 국영 자산 3,000억 달러(약 413조 원)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500억 달러(약 69조 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서는 "도둑질"이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서방은 세계의 군사적, 정치적 안정을 훼손했다"면서 "유럽이 세계 발전의 중심지이자 문화적, 문명적 중심지 중 하나로 보존되길 원한다면 러시아와는 확실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도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