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에 있는 태광그룹 예술영화관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홍성희(75) 영사실장의 말이다. 각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압도적으로 유행하고 서울의 대형극장이었던 명보·스카라·대한극장은 잇따라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그는 13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진행한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예술영화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홍 실장은 50년 전인 1970년대 중반 서울 동대문구 옛 오스카극장에서 영사 일을 처음 익혔다. 당시에는 4,000와트(W)에 달하는 탄소봉 불빛을 반사경을 통해 필름에 투시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상영하다가 가열된 필름이 잘려나가 당황하기도 했다. 영사실 공기는 늘 탁했다. 영화 음질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영화 음향은 2채널(좌, 우)로 녹음됐지만 현재 디지털 방식 영화 녹음은 대부분 6채널 서라운드다. 그럼에도 그는 "스크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은은함과 자연스러움, 영상미가 있다"며 옛 필름과 영화에 애착을 드러냈다.
영사 기술은 바뀌었지만 그는 늘 영화와 함께였다. 1988년 서초구에서 동업자와 함께 150석 규모의 영화관인 양재극장을 차렸던 그는 1990년대 초반 관악구 신림동에서 필름 대신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상영하는 '비디오 극장'을 3, 4년 운영했다. 당시에는 홍콩 영화를 주로 틀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엔 중구 '스타식스' 영화관 영사실에서도 일했다. 2000년 12월 태광그룹이 흥국생명 본사 건물을 지으며 사회 공헌 차원에서 지하에 씨네큐브 광화문을 만들면서 이곳에 자리 잡았다.
홍 실장은 이동식 저장장치(USB), 외장하드, 서버 업로드 등을 통해 전달받은 영화 콘텐츠를 디지털 영사기를 통해 상영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영사기·장비를 매일 꼼꼼하게 점검하고 관리한다. 요즘은 디지털로 영사하기 때문에 영화 상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져 두 곳의 영사실을 오가며 영상·음향 송출을 관리한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 비하면 놀고먹는 수준"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홍 실장은 "처음 영사 일을 배울 때 선배에게 영사는 예술의 마지막 단계라고 배웠다"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도 드러냈다. 그는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동원되는 많은 사람의 수고가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영사를 할 때마다 되새긴다"고 했다.
이런 그에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10여 년 전이라고 한다. "오페라 실황을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 예술의 전당 음향 관계자들이 저희 상영관 음향 시스템을 극찬한 적이 있다"던 그는 "(공연장이 아닌) 일반 극장에서 이렇게 좋은 음향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며 호평했는데 그때가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예술 영화를 씨네큐브 광화문과 같은 전문관에서만 상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처럼 연간 상영일 수 90% 이상을 예술 영화로 채우는 영화관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다. 총 365개 객석을 갖춘 두 개 상영관에선 매일 오전 9시~오후 9시 12회 안팎 국내외 예술 영화를 볼 수 있다.
"여러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멀티 영화관의 장점도 있지만 개성이 살아 있는 극장도 영화계의 다양성에 큰 힘이 된다"는 홍 실장은 현실적 어려움으로 개인 극장이 사라져 가는 요즘, 씨네큐브 광화문은 예술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나 마니아가 최상의 환경에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상업 영화보다 예술 영화를 사랑하는 그의 꿈도 소박했다. 홍 실장은 "영화는 울리고, 웃기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며 "나에게는 삶에서도 뗄 수 없는 친구 같은 존재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일로 한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아직은 건강한 편이어서 몇 년 더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